최근 GP 초소에서의 총기 난사 사고와 군 부대 내의 자살, 탈영 사건이 잇따르면서 병영 내의 인권유린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공무원 임용시 군복무 가산점 제도를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자 여성 페미니스트 운동가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장필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는 한 여성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번 큰 사건이 터지면 여론에 휩쓸려 관심을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고 있는냄비근성에서 나온 군복무 가산점 제도 부활 논의는 시대착오적이며 남성 우월적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에 여전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한국 남성들이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채 월급 없이 2년 이상 군복무에 인생의 황금기를 바쳐야 한다고 투덜대는데, 군복무가 남성들만이 이행할 수 있는 성스러운 의무라고 자랑하던 예전의 목소리에서 왜 불만의 목소리로 바뀌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군복무를 면제받기 위해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던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불평을 하는 것인가?"고 말했다.
장 교수는 "여성들도 남성들처럼 사병으로 군복무를 해야 진정한 남녀평등이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남존여비 사상에 입각한 견강부회적인 발언이다.사병으로 군복무를 하는 남성들이 자기보다 계급이 높은 장교, 부사관 여군들에게 명령을 받는다는 현실에 어처구니없는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에 여성 병역 의무화를 주장하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마지막으로 "여성들은 출산과 가정일, 그리고 자녀교육에 이미 과중한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 여성들의 과중한 부담에 비해 남성들의 병역은 오히려 적은 부담이고 편하지 않은가? 도대체 군복무가 무엇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인지 왜 군복무에 대한 혜택을 원하는 건지 이해가 안된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남성들도 통과하기 어렵다는 전투헬기 조종사가 된 여군을 보면 그런생각을 하는 것이 수치스럽지 않은가? 이런 나약한 남성들을 믿고 기대온 한국 여성들이 안쓰럽다."고 비꼬았다.
장 교수는 여성의 외모와 몸매를 성 상품화라는 행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이유로 미스코리아 대회의 TV 중계와 수영복 심사를 중단시켜 세계에서 유일하게국가 미인선발대회를 방송하지 않는 상황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던 대표적인 여성 페미니스트 운동가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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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열린 '동북아시아 평화'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평화운동가 두 사람을 만나보았다. 노르웨이 출신 평화운동가 엘렌 엘스터(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WRI 집행부)와 이스라엘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르게이 샌드러(New Profile 활동가).엘렌은 '페미니즘에 기반한 비폭력과 안보'라는 주제로 발제를 한 인물이다. 그녀는 발표를 하면서, 매번 국제세미나 자리에서 문제가 되는 “패널 중에 여성의 수가 너무 적다”는 우려를 빠트리지 않았다. 그리고 “왜 젠더(gender)에 관한 우려를 제기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성이며, 남성들은 이런 현상이 남성과 여성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가?”라고 덧붙였다.
세르게이가 이 대회에 참석한 것은 '국가 안보의 영향'들을 분석하고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인 'New Profile'은 남녀활동가가 함께하고 있으며,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평화단체다. 엘렌과 세르게이를 만나 소속 단체 활동을 더 자세히 들어보고, '여성과 안보'라는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
한국과 이스라엘은 징병제도 하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한국과는 달리 여성도 군에 징집되는데, 이스라엘 상황에 대해 설명해 달라.
세르게이: 징집 대상은 남녀 모두이고, 군복무 기간은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이다. 또, 법률(Security Service Law)에 따라 군복무를 마치고도 한 달에 한 번씩 동원돼 군사교육 및 훈련을 계속한다. 여성의 경우 종교적인 이유나 결혼, 임신의 이유로 군 면제를 받기도 한다. 병역 대상에서 면제되는 것은 대법원이 결정을 내리는데, 면제 사유 근거가 명확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성문헌법, 즉 법령화된 조문과 종교적인 율법을 토대로 판결을 내리기 때문에 동일한 사례라 하더라도 해석에 따라 판결이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1년 전에는 몇 명의 여성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했는데, 대법원이 병역 면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판례에 비추어봤을 때 병역이 면제된 사례가 있음에도 이 사건에서는 판결이 달라진 것이다. 이 여성은 현재 군 당국에 의해 징집되었지만, 현재까지 군에 불복종하는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New Profile'의 활동을 자세히 소개해달라.
세르게이: New Profile은 '여성과 군사화된 사회'를 연구하는 공부모임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연구 수준에서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들었고, 정치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 사회운동을 전개할 필요를 느꼈다. 그 시작으로 간담회를 개최했는데, 사회적으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 동안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이름으로 활동들은 있었지만 시민들에겐 식상한 주제였다. 그러나 1996년 '여성과 군사화된 사회'란 이슈를 제기하자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커졌다.
그 후, 페미니즘 시각을 견지하며 군사화에 대한 사회적인 분석 작업을 계속해 2001년엔 아카데믹하면서도 운동적인 성격으로 '군사화된 교육'이라는 제목의 국제회의를 열었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 군사주의가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우리가 자주 접하는 이미지나 광고 등에서 군사주의가 어떻게 유포되었는지 분석해 보여주었다.
현재는 개인들이 일상에서 군사주의를 어떻게 습득하고 받아들이는지, 국가는 군사주의를 강화시키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는지 등에 대해 대중적으로 알리는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한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돕는 작업과, 전쟁에 반대하는 저항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New Profile은 여성, 남성활동가들이 함께 단체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다. 명백히 페미니즘을 표방하고 있는데, 다른 평화활동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달라. 그리고 남성인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
세르게이: 당연히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싶다. (웃음) 그러나 무슨 ~이즘, 혹은 ~주의라고 답을 내리는 문제는 쉽지 않다. 학자들은 이론으로서 규정 내릴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런 가치관과 생각을 활동 속에서 드러내는 것이고, 일상 속에서 페미니즘을 깊이 느끼고 지향하며 생활하고 있지만 말로 하기엔 쉽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페미니즘에 기반한 운동은 고정적인 성 역할을 거부하는 것, 우리가 자연스럽게 용인하고 내면화하고 있는 지배 구조를 배격하는 것, 우리 사이에 차별이 없도록 노력하는 것, 관계에서 위계질서가 생기지 않도록 정치적인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노력하는 것을 주요한 과제로 생각하는 운동이다. 나는 페미니즘은 본질적으로 차별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서 페미니즘은 아나키즘 혹은 급진성과 만난다고 생각한다.
비폭력의 개념은 비폭력적인 직접 행동, 불복종 운동, 급진성을 담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종종 이 성격은 삭제된 채, '무기력한 운동', '저항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세르게이: 진보진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운동의 방식으로 '평화'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먼저 '전쟁'을 얘기하기도 한다. 이것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운동적 전략이기도 하다. 이런 방식의 운동은 폭력의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 비폭력 운동은 결말을 바꿀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견지하며, 비폭력 방식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전략을 짜야 한다.
엘렌: 폭력적인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이미 '비폭력'의 개념을 '무기력한' 것으로 정의를 내리고, 규정짓고 있다. 이런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인 상태에서 논쟁을 시작한다면, 비폭력 진영 내에서는 논쟁으로 풀어낼 여지를 찾지 못한다. 이미 서로가 규정을 내린 채로 논쟁을 시작한다면, 나중엔 논쟁 중인 사람만 남을 것이다.
WRI 헌장에서는 비폭력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폭력은 삶의 방식이다. 비폭력은 사람들 각각의 가치를 알게 하고, 억압에 맞서 외치며, 생명을 긍정하는 행동방식이다. 분쟁에 개입하는 방법으로서 비폭력은 화해를 시도한다”고.
2000년 유엔안보리에서 채택된 여성, 평화, 안보에 대한 결의안 1325호에 대해 좀더 설명을 해주었으면 한다. 당시 이 결의안이 채택된 상황은 어땠는가?
엘렌: 이 결의안은 논쟁적인 측면이 있었는데, 가장 첨예한 지점은 유엔군에 여성들의 참여를 증대시키는 것이었다. 군대 내 여성의 참여 문제, 즉 군대가 더 많은 여성들을 모집하는 내용이다.
노르웨이 정부는 사실상 이 문제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는 수동적인 태도를 취했다. 당시 유엔에서 이 결의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여성들을 군대 내로 참여시키는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그러면 여성들이 입을 다물 것이다.” 이것은 노르웨이 정부를 포함한 각 정부의 입장을 조사할 때 받게 되는 느낌이었다.
결의안에 대한 결론을 떠나서, 내 말의 요지는 여성들이 이런 평화협상을 포함한 정책형성의 중심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 여성들은 그들에게 안보란 무엇인지 정의하는 데서도 배제되어 왔다는 것이 문제다.
두 사람은 '여성과 안보'라는 주제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 동안 안보의 영역에서 여성은 주체로 인정 받지 못했고 이에 대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배제되어 온 것 같다.
엘렌: 안보 개념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 안보는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이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정의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시골지역 여성들에게 안보문제는 환경에 대한 안보 즉, 자신과 가족들의 일상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환경이 오염되고 일상이 파괴될 때, 이 여성들에게는 이것이 안보 위협을 뜻할 것이다. 또 가난한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 안보는 자연재해에 대한 공포를 뜻하기도 한다. 자연재해로부터 피해가 그들의 안보를 위협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보는 일상 속에서 폭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안전한 생활을 뜻할 수도 있다. 여성들이 성폭력의 위협 없이, 폭력의 두려움이 없이 사는 것이다. 또, 성폭력 피해자가 다시 피해를 받는 위협에 시달리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안보'라고 말할 때는 조심해야 하는데, '안보 논리'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편으로 안보가 정의를 뜻한다고도 생각하는데, 선진국에서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우리의 소비와 일상이 제3세계 노동자의 노동권과 생존을 위협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안보이기도 하다.
세르게이: 국가안보의 측면에서 보면 '여성과 안보'는 여성들을 어떻게 전쟁에 성공적으로 동원하고, 군사력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가 중심이다. 여기서 우리는 안보에 대한 논의를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시각을 견지하면서 어떻게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지 하는 측면에서 안보를 생각해야 한다.
(일다, 2005-06-28)
※ 각종 이즘 중에서도 복잡하고, 정의하기에 난해한 것이 페미니즘이 아닐까 싶다. 작게 한정지으면, 젠더와 젠더의 문제로 정의할 수 있고, 포괄적인 측면에서는 불평등에 관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여타의 이즘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상들과 조우하면서 변종을 나으니, 계몽적 페미니즘, 문화적 페미니즘에 래디컬 페미니즘 까지 실로 다양하고, 복잡하기 그지없다. 19세기 여성의 참정권 획득을 위해 주창했던 사람들은 이러한 오늘날의 사태에 대해 짐작이나 했을까? 아무튼 난 여성학 수업을 들어본 적도 없고, 여성학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는 평범한(?) 남성으로서 페미니스틀과 논쟁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음을 미리 밝힌다. 원래 전쟁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것이 종교전쟁이듯이, 종교보다 바꾸기 힘든 젠더간의 싸움이란 이겨봐야 본전인 제로썸 게임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 트랜스 젠더 중에서 이런 운동가가 나왔으면 하는 상상을 하긴 하지만..ㅎㅎ
물론 난 고정적인 성역할의 거부(예를들어 가사노동의 분담이라든지, 양육의 분담과 같은)에 찬성하며, 종교 또는 사상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에도 동의하는 바이며, 직장, 사회내에서의 여성의 성차별 현실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난 여성부의 폐지 또는 불평등 개선부(?)로의 개명을 주장하며, 군복무 가산점 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양한 보상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시덥지 않은 김이현주와 같은 부모성 같이 쓰기에도 완전(?)반대하는 바이다.
이런 나에게 위의 E대의 교수가 말하는 비논리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머리로는 찬성했지만, 뜨거운(?) 가슴으로는 반대했던 미스코리아 TV시청의 즐거움을 뺐어간 영향력 있는 페미니스트(?)께서 그렇게 힘주어 할 말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논리보다 감정만 앞서뵈는 그녀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 출신 페미니스트라는 세르게이의 말이 훨씬 설득력있고, 미래지향적 페미니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대결적 구도의 내 몫 챙기기 보다는 불평등을 인정하고, 개선하는 방향으로의 인식전환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그르게요.. 불평등 개선은 찬성 나머지 말도 안되는 딴지엔 반대 ㅡㅡ;
형 근데 갑자기 왠 심각한 페미니즘 이야기? ㅡㅡa 아래 글들 보다가 적응안되네… @.@
그냥.. 어제 저 위에 기사보고 기가 차 있었는데.. 오늘 아래꺼 본 김에..ㅎㅎ
나 역시도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이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픈 마음도 없지.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자라온 환경은 오히려 여성주의 가모장적이었으니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안에서 조용히 집안일하다가 퇴근한 남편에게 따뜻한 밥을 차려주는 이런 모습들을 그렇게 고집할 아무런 근거가 없기 때문일텐데.. 경험을 근거로 해 페미니스트를 바라보면 난 사회인으로 엄마로 주부로 딸로 거의 완벽했던 엄마와 비교해 '입과 머리만 살았군' 하는 생각이 들 뿐. 페미니스트나 나나 각각의 경험에서 나오는 그런 편견 속에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거라는 생각 뿐야. 이 카오스의 시대에 편견에 기반한 혁명성은 독창적인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결국은 우스운 짓이 아닐까. 서로 더 많이 이해하고 살면 되지.. 세르게이의 얘기는 이즘에 앞서 존재론적 인식에 기반하고 있는 것 같아 끄덕이게 되는구만.. 좋은 읽을거리 캄솨~
편견에 기반한 혁명성이라..ㅎㅎ 여담이지만 페미니스트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진정(?) 불평등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 지는 군.. 물론 꼭 경험에 의해서만 사상가가 되는 건 아닐테지만.. 그래도 남자가 자칭 페미니스트 하는게 대외적(?)으로는 폼도 좀 나고 의식도 있어뵈고, 인기도 있는 것 같더군..ㅋㅋ
ㅋㅋ 니 말대로 더 우낀건 그 편견이 간접경헙에 의한 경우가 더러 보이더라는거.
암튼 가오잡고 살라믄 우리도 페미니즘으로 투신을?
ㅎㅎ.. 그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