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나아트센터  |  김환기作 무제  |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가 21일부터 6월20일까지 여는 ‘천년의 색_ Forever RED’ 전은 도자기와 고생활집기, 현대 회화와 조각 등 50여 점을통해 빨강색 자체의 아름다움과 시대에 따라 변화해온 그 색의 의미를 미술사적으로 조망해볼 수 있는 자리다.

색은 그냥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한시대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강력한 코드이기도 하다. 인류가 이름 붙인 첫번째 색이라는 빨강색은 피와 생명, 불과 절대권력의 상징이자 환희와 사랑의 표출이면서 근대 이후에는 자유와 이데올로기, 모든 권위에 대한 저항의 색이기도 했다.

현대 회화에서 빨강색은 무엇보다 예술가의 열정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나온 이중섭 김흥수 장욱진 유영국 이우환 등 한국 근현대미술 대가들의작품이 그렇다.

이중섭의 1950년대 작 ‘싸우는 소’에서 거친 선으로 표현된 두 마리의소가 대결하고 있는 배경에 흐르는 빨강색은 작가 자신의 내적 갈등의 표현이다. 일제시대와 전쟁으로 이어진 암울한 상황, 그 현실은 물론 스스로의 신산한 삶과도 맞서야 했던 이중섭의 심리적 격분과 불안이 엿보이는작품이다.

화면 전체를 붉은색으로 처리한 김환기의 72년 뉴욕시절 작품 ‘무제’는서울, 파리, 뉴욕을 거치면서 지속적인 작품세계의 변모 끝에 도달한 그의성숙의 경지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마치 우주를 그려나가듯 오만 가지 상념을 담은듯한 엷고 투명한 붉은색 점을 화면 가득 무심히 찍어나갔다.

음산하기 그지없는 빨강색, 그로테스크한 형상이 공통적인 신학철 임옥상안창홍의 그림에서는 80년대 한국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고발하고 풍자하는작가들의 저항의식이 날것으로 드러난다. 같은 민중계열 작가이면서도 홍성담이 2004년에 완성한 193.9 x 781.8㎝의 대작 ‘붉은 악마’에서는 새롭게 발견된 월드컵세대의 힘과 열정이 표현되어 있다.

고미술 쪽에서는 한 점도 귀하다는 진사 백자와 청자가 20여 점이나 출품돼 눈을 즐겁게 한다. 진사는 구리의 녹이 열을 통해 붉은색을 띠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 고온에서 상태가 불안정하고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진사는 백자, 청자에서 색상 표현이 가장 어려운 채료다. “백자에 붉은 물이 한 방울 들어가면 열 배로 귀해지고, 청자에 진사가 들어가면 가격이백 배가 비싸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 고려시대 ‘청자상감진사국화문병’과 조선시대 ‘백자진사당초문각병’ 등은 우아하고도 날렵한 선의 청자, 백자에 어우러진 귀한 진사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보여준다.

한편 탐스러운 천도복숭아의 모습을 그대로 만든 ‘청화백자진사복숭아형연적’, 금강산을 집에 놓고 보는 구실을 했다는 ‘청화백자진사금강산연적’ 등에서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고미술 쪽에서는이밖에도 주칠 장롱, 소반, 좌경 등 생활 집기들도 나온다.

‘빨강’은 사람이 이름을 붙인 첫번째 색이며 가장 오래된 색으로 꼽히고 있다.그래서인지 고미술에서 붉은 색은 일반인이 사용할 수 없는 ‘왕실의 색’으로 꼽힌다. 백자나 청자에 붉은 색이 들어간 ‘진사(辰砂)’ 백자나 청자는 현대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귀하다.이는 붉은 색을 내고자 백자나 청자에 칠한 구리가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붉은 색을 가질 확률이 10분의 1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 붉은 색을 띤 주칠가구도 궁중에서만 사용되는 장·농이다.

외국에서도 붉은 색은 귀족의 색이었다. 얀반아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식’은 빨간 침대를 배경으로 초록색 옷을 입은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부유하지만 평민 신분 때문에 빨간 옷을 입을 수 없는 욕망을 배경으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빨간색’은 예술가의 정렬로 표현된다. 사랑에서부터 증오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붉은 색을 배경으로 푸른 색의 소와 누런 황소가 싸우는 모습을 그린 이중섭의 ‘싸우는 소’는 작가의 ‘내면의 분노’가 잘 나타나 있다. 꿈쩍도 않을 것 같은 오른쪽의 황소에 비해 버틸 힘조차 없어 다리가 꺾여 몸이 쓰러질 듯한 푸른색 황소는 일제시대의 암울한 현실에 작가의 초라한 모습이 투영된 것 같아 슬프게 느껴진다.이외에도 김환기, 김흥수, 유영국, 안창홍, 임옥상, 신학철, 홍성담 작가의 다양한 붉은 작품들이 전시된다.

가나아트센터 김미라 큐레이터는 “문화를 초월한 색의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원래 오방색 전시를 기획했지만 방대한 자료 때문에 일단 빨간색만 전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파이낸셜뉴스   2004-05-18)

※ 아무생각 없이 들린 가나아트센터에서 이 전시회를 봤다. 전시회 전체는 붉은색을 중심으로 한국근대회화와 현대회화에서의 의미를 반추해보는 기획이었던 것 같은데.. 개인적인 느낌에 근대의 위대한 몇몇 작가에 비해 현대작가들의 역량이 다소 못 미친 밋밋한 전시회가 아니었다 싶다. 그저 원화를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이중섭과 임옥상을 보는 행운이 있었던 전시회로 기억될 듯 싶다. 그나저나 요즘들어 내가 무슨 로버트 프랭크도 아니면서 흔들리고, 초점 나가고, 누가 막 지나가고 그런 사진이 좋아지는 건 무슨 조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