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소비 게임-공룡의 트릭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도시는 욕망의 탑이다. 다른 이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 올라가길 충동질하는 아이콘들로 포장된 거리는 우리 삶의 환경이다. 매일 탁하고 터지는 코카콜라의 붉은 액체와 희극적 얼굴로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는 로널드 아저씨는 우리의 일상음식이며 여기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매 식사마다 쓰고 버리는 이쑤시개와 종이컵은 우리의 생활을 아주 편리하고 이롭게 만들기까지 한다. 소비 이미지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반성적 사유의 능력들이 점점 무뎌져가는 것에 비례해 자본과 결합한 욕망의 물결은 속도를 더해 더욱 출렁거린다.
이 전시는 그 거대한 물결, 거대한 덩어리, 거대한 물량, 거대한 속도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성적 사유를 반영해온 작품들을 보이고자 한다. 단순히 스스로를 돌아보자 라는 식의 격언적 태도가 아니라 자기 내부를 향한 비판의 메스를 들이대는 적극적 아픔을 동반한 태도의 작품으로 우리는 지금의 소비 아이콘들의 친숙함을 걷어내고 낯설게 보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02 Replay-이식(移植)
'Replay-이식(移植)'은 과거의 전통적인 소재들이 현대미술 속에서 변환 혹은 차용되어 표현되는 방법들이다. 현대의 문화를 대표하는 디지털, 인테넷, fast 등 젊은이들 문화가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요즈음, 약간 비켜선 전통적 소재들로써 현대를 바라보는, 전통적 소재들의 현대로의 이식을 통해 양자가 적절히 결합되지만 본래의 의도는 박탈된 일련의 작품들이다.
깨끗한 몸과 맑은 정신을 위해 장식되었던 산수, 서민들과 사대부들의 작은 염원이 담긴 십장생, 서민들의 욕망을 담는 방법이 되었던 민화적 소재들, 그리고 항상 수호적인 존재로 삶의 곁에 존재했던 불화 및 신적 존재들…
과거의 소망, 기원이 되었던 전통적 소재들이 현대로 이끌려 나와 현대인들의 욕망을 담아 새롭게 재구성해내는 이 작품들은, 과거를 들먹이며 그것을 회상하고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요소들을 끌어내어 변용, 차용, 패러디하면서 현실을 얘기하고 작은 꿈을 꿀 뿐이다.
과거의 현대로의 '이식'은 현대의 문화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현상이다. 현대인들의 욕망과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사회적 속성을 전통적 요소들을 차용해 옮김으로써 이들이 작게, 그러나 강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사소한 꿈과 욕망을 작가들의 재미있는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다.
03 키덜트(Kid+Adult)-21C 키드의 자화상
키덜트는 키드(kid:아이)와 어덜트(adult:어른)을 합성한 용어로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아이의 감성과 취향을 지닌, 기꺼이 이를 즐기고 누리는 어른을 일컫는다. 사회현상으로서의 키덜트는 바로 이 아이같은 어른들의 환상을 담은 문화형식으로, 그들이 로버트 태권V와 엽기토끼에 열광한다면 여기 젊은 작가들은 직접 그러한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어린 시절의 기호와 감성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을 생산해낸다. 키덜트 특유의 감성은 동화적 상상력의 형태로 표출되기도 하고 때로는 유쾌한 놀이와 한데 뒤섞인 팝아트적인 형식과 혼재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표피적으로 드러나는 유아적 취향과 복고주의 혹은 유쾌한 상상력이 키덜트의 전부인가? 그 근저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키덜트는 결국,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서있는 흔들리는 자아, 혹은 결핍된 자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외적으로는 성장했으나 여전히 소자아에 머무르기를 소망하는 퇴행현상으로, 현실을 대면하는 대신 비교적 행복했던 유아적 기억과 경험의 끝없는 반복소비를 통해 그 유아기적 행복함을 연장하려는 심리적 방어기제인 것이다. 이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21세기 키드의 행복한, 그리고 동시에 음울한 자화상이다.
04 루키즘(Lookism)-외모지상주의
우리는 연일 쏟아지는 광고, 드라마, 영화 등의 매스 미디어 세상에 등장하는 좋은 옷과 멋진 몸매, 좋은 피부와 매력적인 얼굴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한 이미지들을 소비하며 매일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 '세계 제1의 인터넷 인프라 구축'이라는 우리의 환경이 보태어져 '얼짱, 몸짱, 개인 홈피'와 같은 각종 열풍 현상들을 만들어내며, 근원적 함의는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눈에 보여지는 시각이미지에만 집착하는 '외모지상주의'로 치달아 가고 있다.
이에 힘입은 뷰티산업, 미디어 산업은 나날이 번창하며, '미(美)의 기준은 점점 더 획일화고 표준화되어간다.
어릴적부터 들어왔던 '외모보다는 내적인 미가 중요하다'라는 식의 말은 사실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오히려 '이쁜게 착한거고, 이쁜게 능력이며, 이쁘면 용서한다.'라는 식의 농담 아닌 농담들을 들으며, 한편으로는 매우 씁쓸하기도 하지만, 이미 여타의 기준들을 제압하는 막강한 평가 잣대가 되어 버린 '외모지상주의'의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성형과 다이어트의 열풍에 동참해 가고 있다.
본 전시에서는 그룹 코드, 김기태, 박근홍, 박경일, 박현곤, 양혜진의 작품을 통하여 이미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외모지상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끌려갈 수도 없는 우리들의 이중적이며 소모적인 모습을 표현해보고자 한다.
05 아햏햏-현실의 틈새
물질적 풍요를 배경으로 했던 소위 '신세대론'이 논의된 지 불과 10년 후, 경제위기, 최악의 실업사태, 거듭되는 혼란 정국 등의 부조리한 상황과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기는 현실간의 괴리감에서 오는 무기력증은 현실의 벽을 부수고 전진하기보다는 살짝 비켜서거나 한발짝 물러서게 만든다. 헬스기구를 닮은 '성공을 위한 체형보정기구', 임신을 예방(?)하는 피임약 껍질로 만든 피임약아기, 연설자의 말을 가로막는 불량한 연단과 마이크, 볼록거울에 비친 모습을 위안으로 삼는 납작하게 찌그러진 쇠파이프, '날 즈려밝아'라며 계단 위에 납작 엎드린 진달래맨… 이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황당한 상황 설정과 연출은 실소를 자아내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날카로운 세태 풍자, 현실 비판 그리고 놀라운 유머감각은 '미친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덩달아 미치지 않고 잠시나마 현실을 냉정하게 되돌아보는 여유를 미덕으로 제시한다. 현실의 틈새를 감지하는 예민한 감성, 그 틈새에 잠재된 에너지를 불어넣고 균열을 일으켜 결국은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의 힘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06 혼자 놀기-섬. 꿈. 변신
'혼자 놀기'를 병리적 낌새라고 서둘러 단언하기는 어렵다. 굳이 자폐처럼 안타까운 상황이 아니라면 그것은 '같이 놀기'와 함께 사람 본능을 이루는 두 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늘 혼자 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혼자 놀아야 한다. 그 '일'은 때때로 혹독한 연습이 필요하기도 하다. 생로병사의 팔자 속에서 겪게 되는 이별이라든가 질병, 또 죽음 같은 게 그렇다. 거기에는 늘 '숭고'의 관념이 함께 하고, 더불어 '치유'라는 의학적 염원에다, '주술'이라는 오래된 인문적 제스처도 따라다니게 마련이지.
혼자 놀기는, 어쩌면 섬에서 유유자적하며 홀로 보낸 한 철처럼, 환몽 같을 수도 있다. 더 극적으로는 변태(變態)metamorphosis하고 싶은 꿈이고, 대개는 되돌아올 수밖에 없지만, 실제로 둔갑(遁甲)하거나 은신(隱身)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게 하면서 현실과 가상 사이에 다양한 켜layers가 열리고, 그 사이에, 속세를 뽀얗게 뒤덮고 있던 어떤 주술적 아우라가 걷히기도 하고, 또 그 사이에, 세계는 나를 통하여, 나는 세계를 통하여 새롭게 번역되기도 한다. 해서 혼자 놀기는 나와 세계를 변형하고 해석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고, 달리 말하면 옮겨 심는 일이라 할 수 있다.
※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SeMA 2004 – 6개의 이야기는 동시대의 사회, 문화적 현상을 조망해 본다는 취지로 젊은 작가들의 사회문화적 현상탐구의 시각과 그것을 자신의 독창적 시각과 방법으로 작품화시킴을 통해 새로운 미술경향을 조망해 보는 전시회이다. 21세기의 문화와 과학의 발전에 따른 다양한 사회현상이 출현할 때마다 예술의 영역에서는 현상에 대한 표현과 더불어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끊임없는 작업을 벌여왔다. 이 전시회 역시 예술분야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의 형태를 띄는 전시회로 최근의 화두가 되는 6개의 주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작품의 형식은 다양한 사회현상을 반영하듯 설치, 회화, 조각, 영상물 등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으며, 때로는 키치적으로 때로는 우화적으로, 유머스럽게 표현되고 있었다. 젊은 작각들의 참신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주제의식에 대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 역시 작품의 질적수준을 떠나 많은 문제제기와 더불어 주의를 환기해 볼 수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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