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아이 : 1885-1886)
왼쪽은 죽음을 눈 앞에 둔 누나 소피에, 오른쪽은 슬픔에 고개를 떨구고 있는 이모 카렌의 모습.
"이 작품으로 인해서 나의 예술전체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 작품은 내 예술의 돌파구가 되었다. 이후 나의 거의 모든 작품들도 이 작품 덕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그림은 내 어린 시절, 우리 집안의 일들이다. 우리 집안 사정을 잘 아는 사람만이 이 작품 제작에 다른 어떤 것보다도 어린 시절의 체험이 도움이 되었음을 이해할 것이다. 나는 확신 한다. 어떤 화가도 내가 (병든 아이)에서 경험한 것처럼 깊은 슬픔을 작품의 주제에서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뭉크는 어렸을 때부터 순탄치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 6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결핵으로 돌아가시고, 그 후 14살때는 누나 역시 어머니와 같은 병(폐결핵)으로 죽게 되었다. 뭉크의 아버지는 아내를 잃은 뒤 한층 신경질적이 되었고, 어린딸의 죽음으로 그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게다가 뭉크는 선천적으로 병약한 아이였다. 이처럼 어린 시절의 뭉크는 병, 죽음 등의 우울한 환경속에서 성장했고, 아버지와의 말다툼도 잦을 수 밖에 없다.
"내 예술에 있어서 우리 집안의 분위기는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산파와 같다.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베개와 병상과 이불의 나날이었다."
그와 같은 환경과 육체가 그의 정신과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889년, 뭉크는 국비장학생으로 파리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 해 말 ,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뭉크에게 또 한번의 충격을 주게된다.
(생-클루 의 밤 : 1890)
파리의 활기찬 분위기는 뭉크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고, 아래와 같이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몇점 제작하기도 한다.
(칼 요한 거리의 봄날 : 1891)
(칼 요한 거리의 저녁 : 1891)
(칼 요한 거리의 봄날)에서 생기넘치던 사람 들이 (칼 요한 거리의 저녁)에서는 이유모를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낮과 밤 사이인 저녁무렵의 텅 빈 공간의 체험을 존재감의 상실, 절망, 죽음의 두려움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절망 : 1892)
"나는 두 사람의 친구와 길을 걷고 있었다. 태양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약간 우울한 기분이었다. 돌연 하늘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나는 멈추어 서서 난간에 매달렸다.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피처럼 칼날처럼 피어오르는 구름이 보였다. 바다와 곶은 푸른색을 띤 검은 색이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가 버렸다. 나는 거기에 멈추어 서서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자연을 관통하는 커다란 절규가 끝없이 계속되는 것을 들었다"
(절규 : 1893)
뭉크는 이 작품의 판화작품 아래쪽 여백에 이런 말을 적어 넣었다.
"나는 자연을 뚫고 들려오는 절규를 느꼈다"
1880년대부터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아 운동'이라고 불리는 사상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 운동은 철저한 개인의 자유를 위해 일체의 인습에 도전하고, 사회악을 고발하며, 더 나아가서는 국가 권력의 폐기까지 요구하는 아나키즘을 이념적 기조로 삼고 있었다. 청년 뭉크는 그 뜻에 많은 공감을 느끼고 그 사상운동의 정신적 지도자인 한스 에거르를 존경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 1893)
환락의 밤을 보낸 후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자고 있는 여자를 묘사한 그림.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아의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림. 다만 뭉크의 관심은 이데올로기, 사회현실문제가 아니라 이 여자의 운명에 대한 인간적 통찰에 집중하고 있다.
보헤미아운동의 영향에 따라 뭉크는 '자유연애'를 실행에 옮겼는데 프랑스 유학오기 전에 약 6년간 연상의 유부녀 헤이베르그와 연애를 했다고 한다. 헤이베르그는 모든것을 제멋대로하는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적 기질의 여자였다.
(월광 : 1893)
뭉크는 자신에게 있어서 여자의 의미를 차갑게 되씹어 보고 여자의 거짓말과 가면 뒤에 감추어진 '메두사의 얼굴', 인생에 대한 불신과 허무함 등 을 주제로 이 작품을 남겼다.
뭉크는 거의 평생동안 '생의 프리즈'(Frieze of Life)에 관심을 쏟았다. 프리즈(frieze)란 그리스 로마 건축에서 기둥과 지붕 사이의 조각이나 문양으로 장식된 긴 띠 부분을 말하는데 중세 건축에 많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뭉크는 긴 화면을 자기 나름대로의 연작 형식을 통해서 한 편의 웅장한 교향곡을 연출하려 했다. 연작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자신의 모든 작품을 하나로 묶어, 인생의 파노라마로 만들려는 참으로 끈질긴 노력이었다.
"남자들이 책을 읽고 , 여자들이 뜨게질하고 있는 따위의 실내화는 더이상 그릴 필요가 없다. 내가 그리는 것은 숨을 쉬고, 느끼고, 괴로워하고, 사랑하며,살아있는 인간이어야 한다. 보는 사람은 이 주제에서 신성함과 숭고함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교회에서 하는 것처럼 모자를 벗을 것이다."
사랑에 대한 기대와 동경에서부터.. 사랑의 아름다움을 거쳐.. 배신, 질투, 죽음, 절망에 이르는 삶의 파노라마를 전개하고 있다.
(마돈나 : 1893-1894)
뭉크의 '절규' '입맞춤' '불안'등의 작품과 함께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뭉크가 보는 여자의 상은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꿈꾸는 여인, 삶을 갈망하는 여인, 그리고 체념하는 여인.
뭉크는 이 '마돈나'에 나타난 여인에 대하여 말하기를 ;
"몸을 바치는 여자- 성모의 고통스런 아름다움에 싸인다."
"모든 세계의 움직임이 정지하는 순간, 너의 얼굴은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포함하고 있다. 익어가는 과일처럼 새빨간 너의 입술은 고통 때문이기도 한 것처럼 달싹 벌어진다. 그것은 시체의 미소이다. 바야흐로 삶이 죽음에게 손을 내민다. 죽어서 사라진 무수한 세대와 미래의 세대와의 사이에 인연이 맺어진다"
(사춘기 : 1894)
(병실에서의 죽음 : 1895)
(입맞춤 : 1897)
(입맞춤 : 1897)
1900년을 전후로 하여 뭉크에겐 튤라 라르슨이라는 애인이있었다. 그녀는 결혼을 원했으나. 뭉크는 결혼해서 가족을 갖는다는 것을 정말 두려워했다. 1902년 결혼을 조르는 튤라와 실랑이 중에 권총이 잘못 발사되었고, 뭉크는 이때 왼쪽 가운뎃손가락 절반을 부상 당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뭉크는 또 한 번의 정신적, 육체적 고뇌와 표류의 시기를 맞게 된다. 피로 얼룩진 침대 앞에 똑 바로 서 있는 암살자는 튤라 라르슨이고, 죽은 남자는 뭉크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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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독일 나치스 정권의 선전장관 괴벨스는 뭉크에게 손을 뻗쳤다. 괴벨스는 독일인들의 인종적 편견을 부추기고자 했다. 그는 게르만족의 원형이 잘 보존된 스칸디나비아반도 태생의 뭉크에게서 프랑스 인상주의에
맞설 수 있는 '시대정신'을 기대했다.
괴벨스는 뭉크에게 괴테 메달을 수여하고 그의 작품에 최대의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뭉크는 협조하기를 거부했다. 나치는 뭉크의 작품이 그들의 정치적 의도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 그리고 1937년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된다. 뭉크의 그림은 나치가 기획한 '퇴폐미술전'에 전시되어야 했고 여기에 내걸린 그림은 헐값에 경매됐다. 뭉크의 그림은 정치와 무관했으나 시대의 광기는 그의 예술을 모욕했다.
'요람에서부터 죽음을 안 화가' 뭉크.
어머니는 다섯 살 때 폐결핵으로 죽었고 누나는 그가 열다섯 살 때 역시 폐결핵으로 숨졌다. 누이는 정신병에 시달렸다. 뭉크도 열세 살이 되던 해 크리스마스 밤 피를 토하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왔다.
"우리 가계는 그 뿌리까지 어지럼증(정신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에 감염돼 있었다. 죽음과 병은 검은 천사처럼 주위를 맴돌았다"
삶과 죽음의 응시(凝視). 이것이 뭉크 예술의 원천이다. 그의 그림은 지옥의 유황불에서 막 건져 올린 듯 흐물흐물하다. 누군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캔버스 밖으로 뛰쳐나올 것처럼 음산하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병(病)이요, 도취이다"
사랑의 모티브조차 죽음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대표작 '마돈나'는 성적 엑스터시에 빠진 듯한 나신(裸身)의 성모이자 황홀경에 몸을 던진 채 자신을 포기하고 있는 마리아이며, 그것은 생명의 환희, 수태(受胎)의 전조이면서 동시에 불길한 '시체의 미소'이다. 뭉크에게 여자는 '죽음에 지배되는 동물'이었다. 1900년 그는 자살을 기도하며 집요하게 결혼을 강요하는 한 여성 때문에 극도의 신경쇠약을 겪어야 했다. 뭉크는 숨질 때까지 독신으로 살았다.
※ 어려서부터 죽음의 공포를 접해본 심약한 소년은 평생 환상속에 시달려야 했다. 극도의 신경쇄약과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던 뭉크. 미술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영향을 생각하기 전에 난 그의 그림속에서 나약하고, 흔들리는 한 영혼을 발견하게 된다.
꼭 갤러리에 가서 작품감상하고 난거같은 느낌이다..
넘 좋아서 뭐라 할말이 없네^^
^^.. 저도 여기저기 가져온 글인데요..멀.. 암튼.. 좋으셨다면… 저로선 기분좋은 일..ㅎㅎ
저는 뭉크의 사춘기란 작품을 좋아합니다.
^^; 그러시군요.. 사춘기 유명한 작품이죠.. 전 이 작품을 장정일의 소설(아담이 눈뜰때 였었죠? 아마)에서 처음 들은(?) 것 같네요.. 주인공이 저 그림을 무척 좋아했었던 것 같은데.. 정말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첫 월경을 맞는 소녀의 불안심리를 기가막히게 표현한 것 같아요.. 아마도 무표정한 표정과 X자로 교차한 팔, 그리고 불안심리를 상징하는 듯한 검은 색의 과도한 그림자가 그런 효과를 나타내지 않았을까 하는데..ㅎㅎ
참.. 전 개인적으로.. 마돈나를 좋아합니다.. 마돈나라는 대상이 가지는 성스러운 의미와 그림에서 나신으로 나타나는 퇴폐적인 희열과 고통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그런 이미지.. 뭉크에게 여성은 그런 복합적인 존재였나 봅니다.. 저처럼..ㅋㅋ 넝담임..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