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란 정체성의 상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며, 일상생활의 무료함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방편인 동시에 소비사회로부터 이탈하기 위한 도구여야 한다'는 화두에 따라 지역성(지역적인 정체성 : identity)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는 건축가로 흔히 마리오 보타(Mario Botta)라는 스위스 건축가를 꼽고 있다. 그의 건축세계는 강력한 기하적 형태, 홈이 파인 띠로 구성되는 파사드, 그리고 철저하고도 환상적인 디테일의 3대 요소로 특징지워 진다. 특히, 그는 스위스의 티치노(Ticino)를 거의 떠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이르기까지도 주택 이외의 작품을 설계한 경우가 거의 없는 까닭에 세계 건축계에서는 티치노=마리오 보타=지역적 특성이 강하게 표방된 주택을 일련의 등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인간정주지의 역사를 태초부터 현대건축에 이르기까지 살펴볼 때 근본인 동시에 가장 영속적인 것은 오직 주택밖에는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라는 점을 놓고 보면 주택을 탐구의 대상으로 치열하게 추구하는 그의 건축세계가 이해되기도 한다.
마리오 보타는 1943년에 스위스의 멘드리시오(Mendrisio)에서 태어났다. 15살이 되던 해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18살이 되던 해까지 후일 그의 건축작업 대부분의 대상지가 되는 루가노(Lugano)에 있는 건축회사에서 제도사로 일하다가 건축수업을 받기 위해 밀라노의 예술학교를 1961년부터 4년간 다니게 된다. 1965년부터는 베니스에 있는 그 코르뷔제 사무소에서 일하며 카를로 스까르파(Carlo Scarpa)와 지우제페 마짜리올(Mazzariol)등의 문하에서 건축의 수련도를 성숙하게 키우기도 하였다. 1969년에 베니스에서 루이스 칸 전시회를 공동기획한 뒤 루가노로 가서 자신의 사무소를 개설하였으며, 1971년에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는 카데나쪼(Cadenazzo)의 단독주택을 설계한 뒤 1990년대 초기까지 주택 이외의 건축유형은 설계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는 세계적인 건축가의 명성과 함께 파리 주변 이브리(Evry) 신도시의 성당이나 여러 도시의 업무용 빌딩 등을 설계하며 이제는 동경이나 샌프란시스코 등지의 대규모 프로젝트 설계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1989년에 CICA 건축상을 수상하였으며, 그가 즐겨 사용하는 대리석건축으로 인하여 1993년에는 이태리에서 대리석 건축상을 수상함과 아울러 국제 건축비평가상을 받음으로써 그의 작품에 내재한 건축철학이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음을 공지하는 동기가 되었다. 1986년에는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전시회가 개최된 바 있다.
그의 건축적 특성은 흔히 루이스 칸(Louis Kahn)이나 르 코르뷔제의 그것과 비교된다. 빛의 처리와 기하학의 추구라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보다 설득력이 있는 설명으로는 디자인과 그 디자인의 바탕을 이룬 이론적 해석의 일치가 아닐까 싶다. 그의 이 같은 일치화 과정은 대개 드로잉을 통해 구현된다. 그는 드로잉에 대해 타고난 재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자신의 건축작업을 소개한 글에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부기하고 있다 ; "나는 드로잉을 할 때 연필이 내 작품속에 숨어있는 아이디어와 느낌, 그리고 메시지를 적절하게 조사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진다. 이러한 작업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통해 문제를 표현하는 가장 빠른 길을 발견하곤 한다….건축적 아이디어에 대한 해석과 연구과정은 드로잉을 말로써 표현하려고 할 때보다 제도판 위에서 연필의 움직임을 조사할 때 훨씬 쉽고 자연스럽다". 드로잉을 통한 그의 작품생성 과정은 건축가들을 다루고 있는 여러 종류의 잡지나 작품집의 마리오 보타 부분에는 유난히 드로잉이 많이 담겨있다는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의 초기 작품인 티치노의 리바 산 비탈레 (Riva San Vitale) 주택의 경우에도 개념도를 먼저 그린 후 이를 기초로 실제적 건축작업을 이어갔는데, 그 지역의 물리적 환경해석에서 우러난 3차원적 형태의 골조를 우선적으로 드로잉 한 후 이를 그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거친 재료로 마감함으로써 건축으로 변환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그 결과가 자연주의적인 것도 아니며 값싼 낭만주의적인 것도 아닌 지역 고유의 토착성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매우 "균형적인 선택"이 그의 작품성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강연회와 작품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는 그의 작품은 최근 설계된 계획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주택이며, 꼽을 수 있는 것들로는 카데나쪼의 단독주택(1971), 리고르네토(Ligornetto)의 단독주택(1976), La Casa Rotonda로 불리는 스타비오(Stabio)의 단독주택(1982), 모르비오 수페리오레(Morbio Suoeriore)의 단독주택(1984), 프랑스에 건설된 메디아 하우스(Media House:1988)와 다로(Daro)의 단독주택(1992) 등이 있다. 주택 이외의 작품으로는 티치노의 중학교(1977)와 루가노의 은행(1988), 벨린조나(Bellinzona)와 루가노의 주상복합 건축물(1991), 이태리의 포르데노네(Pordenone) 교회(1992) 등을 꼽을 수 있으며, 프랑스 파리 인근의 이브리 신도시에 건설된 성당 등이 있다.
(출처 : architour)
※ 솔직히 Mario Botta는 그가 초기에 보여준 매력적인 몇 가지 주택작품을 제외하고는 그닥 좋아하진 않는 편이다. 특히 오피스건물에서 조차도 주택에서 그가 보여줬던 분절된 큐빅박스, 벽돌의 소재적 특성등을 무리하게(?) 사용하는데에 대해 동의하기 힘들다. (머 교보강남타워의 경우 벽돌이 아니라 타일이라지만…)
어쨌거나 거대한 붉은색 큐빅박스는.. 모든 공간적 에너지를 자신속에 가둔채 제일생명 사거리 한 구석탱이에 단단하게 박혀있다.
여기 인테리어는 울 회사 작품입니다
ㅎㅎ.. 멋지군.. 큰회사라 다른갑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