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ustav Klimt, Danae, 1907-08, Oil on canvas |
미술사가들로 부터 경멸받던 17세기 바로크, 로코코의 부르조아적 예술을 지나 조금은 심각해진 신고전주의 그리고 현실도피라 비난받은 낭만주의, 그리고 사실주의. 최초의 근대적 예술관이라 할 수 있는 인상주의를 거쳐 상징주의 혹은 아르누보 양식은 위치한다. 역사란 변증법적인 발전이라 하듯이 미술사 역시 하나의 가치와 그에 대한 반성, 새로운 모티브의 반복이란 관점에서 18~19세기는 역사의 격랑속에 무수히 많은 사조의 등장과 소멸을 경험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볼때도 급격한 산업화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식의 성장을 경험했음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아르누보란 불어로 '새로운 예술'이란 뜻으로 19세기 말 영국에서 모태가 된 미술 운동이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 기술 발전으로 미술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었다. 하지만 진정한 예술이 파괴되었다고 자각한 예술가들은 수공예와 중세 장인 세계를 동경하며 미술과 공예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아르누보가 발생하게 된 기틀이 되었다. 원래 건축이나 공예품, 그리고 조각 등의 장식미술에 접목했는데, 점차 모든 미술 분야에 나타나기 시작하며 아르누보는 전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훗날 장식 과잉의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세기말적 악취미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KISS라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Gutav Klimt는 1862년 7월 14일, 오스트리아제국의 수도 빈에서 보헤미아출신의 동판조각사이자 금세공사였던 아버지 밑에 7형제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관습적인 주제를 아카데미적 양식으로 그리는 벽화가로 출발했으나 1900-1903년에 그가 그린 비엔나 대학의 벽화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면서, 새로운 독자적인 자기만의 회화양식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Klimt를 논할때 빠질 수 없는 부분이 여성에 대한 표현이다. Klimt에게 있어서 여성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용감하게 적지에 뛰어들어 나라를 구한 구원의 이미지, 포옹에 도취되어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한 여인으로서의 이미지, 비록 외적인 모습은 창녀를 연상시키지만 사랑스런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는 어머니로서의 이미지 등 Klimt의 그림속에는 유난히도 많은 여성의 이미지가 담겨져 있다. 반면에 남성의 이미지는 무관심하고 나약해보이며 때로는 맹목적으로 표현된다.
그렇다면 왜 Klimt는 여성을 그림의 주체로 삼았을까? 그것은 19세기말 남성으로 표현되는 과학과 이성의 힘이 점차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사회의 주체로서 여성이 부각되는 시대상황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Kimt를 둘러싼 가정환경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만성적인 정신질환에 시달렸던 어머니와 어린누이 그리고 그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한 충격이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이어지면서 화풍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한 아픔을 겪으면서 여성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실감하게 되었으며 특히 새 생명의 잉태와 탄생을 주관하는 여성만이 가진 특권에 대한 경이로움과 신비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Klimt는 미술사에서 아르누보 양식의 분리파를 이끈 거장으로 평가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어떤 주의나 화파에 속하지 않은 화가이다. 그의 화풍에는 인상주의와 상징주의, 표현주의의 화풍이 섞여있기도 하면서 그만의 독특함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유명한 Kiss보다도 저 위의 Danae에서 보여지는 신화 속 금기에 대한 Kimt의 해석에서 난 예술적 환상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난다.
※ Danae에 관해…
아크리시오스는 그의 딸인 다니에가 낳은 아들(외손자)에 의해 죽는다는 신탁(神託)을 받는다. 그 후 아크리시오스는 딸을 지하에 있는 청동 방안에 가두어 놓고 어떤 남자도 접근할 수 없도록 하였으나, 하늘에서 이를 지켜 본 제우스가 황금 빗물로 변신하여 그녀의 두 무릎 사이로 스며들어가 교접(交接)하여 페르세우스가 태어났다.
왕은 다나에와 페르세우스 모자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는데, 이들은 세리포스섬에 표착, 이 섬의 왕 폴리데크테스의 동생인 디크티스에게 구조되어 페르세우스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뒤에 경기회(競技會)에서 페르세우스가 던진 원반(圓盤)에 경기를 관람하고 있던 아크리시오스 왕이 맞아 왕은 죽고 말았다.
내가 어렸을적에 그리스신화를 읽으면서 제일 먼저 느낀것이 이 제우스라는 신은 도대체가 순~~ 난봉꾼이라는거… 보면 여기가서 이여자.. 저기가서 저여자 찝쩍거려서 낳은애들이 도무지 수도 셀 수 가 없더군. 그래서 그때 내가 이책을 다 읽고 한번 그 가계도를 그래프로 그려보구 싶기까지 했었다는… 뭐.. 부러운일일 수도 있지만…^^;;
ㅎㅎ.. 그러게요.. 제우스 와방이야..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