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교회 설계작업은 나의 두 번째 교회건축이었다. 이번 교회 건축에서의 여러 어려움들은 좋은 성전을 이루겠다는 같은 목적아래 서로 배우고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극복되어졌고, 또 하나의 교회가 그 어떤 질시와 섭리에 의해 이루어졌다

○ 계획의 개념

禮拜의 場

지하 분묘에서 관을 제단삼아 예배하던 동굴(Catacomb)에서 비롯된 교회, 기독교가 공인되 면서부터 신중심의 권위를 유지해오던 현대 이전까지의 교회,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후 인간 중심적인 분위기를 추구하며 변모해오고 있는 현대교회에서도 신에 대한 예배는 교회가 가 져야할 변할 수 없는 기능이며 어떠한 양식으로 변모해가든, '만민이 기도하는 집' 즉 예배 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교회가 가져야 할 기능상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것이다.

만남의 場

기도가 신과 인간의 만남이라면, 인간과 인간의 만남 또한 이 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 만남의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해야만 한다. 인간과 그 신앙의 대상인 신의 관계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의 표본이 되어 신자와 성직자, 그리고 그들이 이루는 교파와 그들이 둘러싼 사회, 나아가서는 인간과 다른 피조물간의 관 계를 대립덕 관계로서가 아닌 신 안에서 하나라는 '공동체의식'아래 이루어지는 만남의 관계 를 만든다. '공동체의식'아래 이루어지는 만남, 이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 그것을 교회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祝祭의 場

이러한 만남이 이루어질 때, 그 기쁨은 넘쳐 찬양과 기도로써 드리는 예배가 이루어지며, 그 것이 신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축제의 영적 기쁨이 된다면, 교회는 신과의 만남에 의해 영적 기쁨이 충만해지는 축제의 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전도의 소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교회건축이 가지는 상징성은 그 자체로서 신도, 비 신도를 가리지 않고, 그들의 이미지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마치 어둠을 밝히는 빛처럼,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그들의 마음속에서 그 어떤 마음의 근원을 기억 하게 해주는 형태, 즉 교회의 외형이나 내적인 면에서의 독자성이 부여될 필요가 있다.

○ 이미지의 추출

이 개념들에서 추출되는 요소들과 기능을 수용하고, 이들 각각이 개체이면서도 신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나는 크고 작은 부정형의 벽들을 하늘위의 한 점을 정하여 하나로 이루어지게 하고, 그 형성된 벽들의 외부를 하나 하나의 부서진 벽 돌을 사용하여 성전을 짓기 위한 인간의 고뇌와 노력을 부조하듯이 새겨갔다. 인간만의 순 수한 뜨거움이 느껴지도록 하려는 뜻에서였다.

도로에 접한 전정(Plaza)을 완전히 개방하여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려는 교회의 정신을 표 현하고, 좁아지며 길게 위로 인도되는 성전으로의 길은, 신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마음의 길이 되게 도입부로 삼아, 그 끝남에서 예수고난의 저 십자가를 그대로 재현하여 성전입구에서 옷깃을 여밀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시끄러운 도심에서의 온갖 소음을 차단해버리고,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 하늘로 열린 성전, 그 성전을 이루는 꾸밈없는 노출된 벽들이 천정과 하나가 되어, 옛 바벨탑을 쎃던 이들의 우를 범하지 않고, 신안에서 하나됨을 갈구하는 공동체의식을 느끼게 하여, 예배의 장, 만남 의 장이며 또한 축제의 장이 되게한 본당.

개개가 모여 오로지 한 곳을 향한 영적 갈구가 하늘로만 열린 옥상교회는 번잡한 도심에서 홀연 신과의 대화가 가능한 기도의 장으로 주어지게 했다.

이제 장의 이루어짐은 있었으니, 이것은 끝이 아니요, 시작인 것이다.

(출처 : 경동교회 홈페이지, 김수근)

※ 김수근氏의 경동교회를 다녀왔다. 항상 사진으로만, 버스에서 차창밖으로만 보아오던 건물을 실제로 들어가보니.. 감회가 새롭다. 공간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으며, 좁고 가느다란 진입로를 지나 본당에 들어갔을때 둔탁한 열주와 제단위로 떨어지는 빛이 감동스러웠다. 트라이포드가 없어 정작 찍고 싶은 것을 못 찍은 것이 못내 아쉽다. 20년이 훌쩍넘은 건물은 아직도 생동감과 엄숙함을 그대로 간직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