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vard Munch가 사람들에게서 시체의 얼굴을 보았다면 Giacometti는 그 들 영혼의 가벼움을 보았다. 인간을 그 영혼을 담고 있는 형체가 아닌 영혼의 기본적 실체에 포커스를 맞춘 작가 Alberto Giacometti. 그가 남긴 조각 작품을 보면 점점 가늘어져만 가는 모습에서 위태로운 현실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때 그의 작품은 성냥갑 속에 들어 갈 만 큼 작았고 깍아내다 못해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고 할 만큼 형태의 무게감을 덜어내고자 열중했음을 알 수 있다. '쟝 쥬네’의 말처럼 Giacometti는 겉치레가 없어질 때 인간에게 남아 있게 될 것을 발견하기 위해 시선에 방해가 되는 것을 제거해 버릴 줄 아는 작가였다.
1901년 10월 10일 스위스의 보로고노브에서 태어나 1966년 1월 11일 쿠르에서 사망한 이 조각가는 또한 인간의 고독을 강렬하게 드러냄으로써 문학의 실존주의와 비견되기도 하는 작품들을 남겼다. 인간의 의식만이 살아있는 것이라면, 예술가는 인간을 무엇보다 하나의 의식으로 표현해야 한다. 이로 인해 한동안 그의 조각은 자꾸 작아졌다. 물량감이 크면 `의식으로서의 인간'을 배반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마지막 조각칼질에 나머지 흙덩어리마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이 딜레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탈출구를 찾다보니 이제는 공중에 수직으로 연필선을 그은 것마냥 가늘고 긴 형상이 나타났다. 그로서는 덩어리감과 물질감을 크게 덜면서 의식으로서의 인간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1963년에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의 무대장치를 설계했던 Giacometti는 조각뿐만 아니라 회화를 통해 리얼리티에 도전하고 실제로 현실에 가까이 접근하는 방법을 추구했다. 그는 또한 작품이란 실체의 공간에서 현실감을 배가시켜야 한다고 여겼다. 사무얼 베케트의 소설과 희곡에 나오는 인물들에 강한 영향을 받은 그의 인물상들은 각각의 존재 속에 공간과 시간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세계관을 표현했다. Giacometti는“나는 생명체, 그 중 무엇보다도 사람의 머리 앞에 서면 그 생명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의 기(氣)가 그것을 순간적으로 파고들어서 이 양자가 이미 하나가 되어 버린 듯함을 때때로 느낀다.”라고 말한다.
Giacometti의 작품은 그 형상이 지니고 있는 비현실성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형상과 그 형상들 사이의 비워진 부분을 모두 포함한 그 전체로 보아야 한다. 또한 Giacometti의 조각 작품들 속에 정신의 깊이가 느껴진다거나 인간의 고독 같은 것이 느껴진다면 무엇보다 Giacometti 자신이 피그말리온처럼 조각 안에 사람의 영혼을 담으려고 했던 조각가이자 화가였기 때문일 것이다. 조각은 사람을 담고, 사람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기에…
(Bibliography :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 Giacometti의 조각을 실제로 본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다만 가장 깊게 그에 대한 인상을 받은 것은 베게트의 연극에서 였던 것 같다. 한그루의 말라 비틀어진 나무와 그 나무를 등지고 있는 고고와 디디의 모습에서 사전지식이 없던 나는 Giacomett를 읽었으며, 베게트의 연극과 더불어 깊은 인상으로 기억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는 과연 존재의 가벼움을 나타내고자 한 것일까? 아니면 존재의 고독함을 나타내고자 한 것일까? 아마 둘 다이겠지만, 깎이고 깎여 더는 남지 않은 그의 조각상에 나는 나를 이입해 본다.
음………. 조각상에 들어가기엔……..넌 너무 두껍지 않니?..
차라리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다고 해라…..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