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문을 할 때 부딪히는 가장 당혹스러운 질문은 "우리가 하고 있는 학문을 통해서 어느 정도 현실 파악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만일 개별학문을 통해서 현실의 전체상 파악이 불가능하다면 그 원인이 무엇일까? 이 같은 물음은 학문하는 행위를 에워싸고 있는 여러 가지 물음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학문을 학문되게 하는 조건은 무엇인가(학문의 학문성), 학문과 일상경험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학문과 신앙은 전혀 별개의 것인가, 아니면 이론 구성과 이론 평가에 신앙이 본질적으로 역할할 수 있는가, 학문의 자유는 어떤 성격을 띠는 것일까, 학문과 사회 경제적 조건은 어떤 함수 관계가 있는가.
2. 이와 같은 여러 질문 중에서 가장 먼저 물어보아야 할 것이 학문이 어느 정도, 어떻게 힘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 힘의 한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학문의 힘과 한계는 학문 외적인 조건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학문 안에서, 즉, 학문이 지니고 있는 성격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을 이 강의에서는 체계성과 방법성으로 규정하려 한다.
3. 학문하는 행위와 일상적인 행위의 차이는, 학문이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이념과 방법과 절차로써 주어진 자료와 대상을 정리, 배열하고 일정한 전체적 틀을 형성한다는 말이다. 많은 자료와 단편적인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을 통일적인 전체로 형성하지 못하면 학으로서의 조건이 결여되어 있다 하겠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기 때문이다. 이 때 구슬을 꿰는 줄이 곧 이념이다. 칸트는 학을 체계로 정의하면서 이념이 없으면 학이 학으로서 성립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이 때 이념은 경험적 개념이 아니라 통제적 이념으로서 새로운 발견을 유도하며, 경험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4. 학문하는 행위는 또한 방법적이다. 현실을 기술하고 파악할 때 눈에 와 닿는 대로, 몸에 부딪히는 대로 하지 않고 일정한 방법과 절차를 사용한다(예:실험관찰방법, 조사연구방법, 문헌비평방법 등). 이념이 '무엇으로' 구슬을 꿰느냐 하는 것에 대한 답이라면, 방법은 '어떻게'꿰느냐에 대한 답이라 하겠다. 학문은 단순히 눈앞에 '주어진'대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대상을 '주어지도록'하는 것이다. 방법은 따라서, '주어진'것을 배열, 정리하는 것이기보다 대상을 주어지도록 요구하는 인위적 수단이다. 이런 의미에서 학문이 밝히고자 하는 현실의 구조와 의미는 오직 질문하고 요구하는 이성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할 수 있다.
5. 학문의 체계적 성격과 방법적 성격으로 인하여 학문 가운데 늘 도사리고 있는 위험은, 학문을 하나의 닫힌 체계로 만들려는 유혹과, 하나의 방법으로 모든 현실을 설명하고자 하는 방법 단일주의(METHOD-MONISM)이다. 후자의 예로는, 데카르트이후 칸트에 이르기까지 17,8세기 유럽철학에서 방법 논쟁을 일으켰던 수학적 방법(MORE GEOMETRICO)과, 칸트 이후 20세기의 논리실증주의, 귀납적 환원주의를 들 수 있다.
6. 학문의 힘과 한계는 학문과 현실의 관계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구명될 수 있다. 학문은 '현실의 도식화'로서 현실의 모든 면모를 지도 위에 올려 놓지 않고, 한 면만을 '떼어서'(즉, 추상화함으로써) 현실을 그린다. 바로 이 도식화를 통해서 현실 가운데서 정위(定位)가 가능하다. 학문은 인간이 현실 가운데 정위하는 데 있어서 유일한 방책과 전략이 아니라, 종교, 예술 등과 더불어 여러 가능한 전략 중 하나에 불과하다.
7. 학문을 '현실의 도식화', 즉, 현실을 지도 위에 옮기는 작업으로 볼 때, 몇 가지 관찰이 가능하다. 즉, 1). 한 개별학문으로 현실의 전체를 설명하지 못한다(반대의 경우: 심리학주의, 사회학주의, 역사주의). 2). 현실의 다양성과 한 측면을 다른 측면으로 환원이 불가능한 점은 결국, '학문 상호간의 공동연구'(INTERDISCIPLINARY STUDY)를 요청한다. 3). 학문보다도 구체적인 현실이 보다 풍부하기 때문에 (자연의 경치와 지도 비교), 항상 애매모호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4). 학문은 근본적으로 개인적, 인격적 참여(PERSONAL COMMITMENT)이다.
8. 학문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학문한다'는 것은 배움과 연구, 이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연구'가 현실을 지도 위에 옮기는 창조적 행위라면, '배움'은 이미 만들어진 혹은 만들어지고 있는 지도를 읽고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훈련받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오직 잘 배우고 창조적일 때만이 새로운 지도를 만들 수 있다.
강영안(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발음을 조심해야 할듯….흠….
항문의 힘은 종말 위대해…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