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zanne, Paul
Self-Portrait with Soft Hat, 1894
Bridgestone Museum of Art, Tokyo
자연의 재현이라는 문제에 심취해 있던 인상파가 득세하던 시절,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세잔은 법과대학에 진학하였으나, 친구 에밀졸라의 영향으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초기의 인상파의 화풍에 적응하지 못하고 몇번의 출품에서 미끄러진 세잔은 인상파 그룹과 결별하고, 친구 에밀졸라와도 결별한채 고향인 엑상프로방스에 돌아와서는 작품 생활에만 몰두하였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빈곤했던 세잔은 아버지에게 갖은 수모를 받고, 생활비를 얻어쓰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쳐간다. 그의 작품속에 정물이 많은 것도 이러한 곤궁한 생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세상의 모든 비난과 외로움, 고독 속에서도 그는 “자연은 구형 ·원통형 ·원추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라고 견해를 밝힐 만큼, 자연을 단순화된 기본적인 형체로 집약하여 화면에 새로 구축해 나가는 자세로 일관했다. 형태를 단순화하고, 시점을 달리하면서 하나의 평면속에서 사물을 해체하고, 재구성한 그의 시도는 결국 보이는 것 이면의 다른 것을 찾고자 한 최초의 시도가 아니었는가 싶다. 결국 그는 후세에 야수파와 입체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개발해 나갔다. 그를 근대회화의 아버지라 일컫는 것도 이러한 점에서 근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비난과 멸시, 아버지의 수모 속에서 그를 다잡아 준것은 엑상프로방스의 자연과 평생을 그의 곁에서 그를 지지한 아내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평생을 보이는 것과 그 이면의 것을 위해 투쟁한(?) 그의 예술혼이 이 미완성된 자화상에 녹아들어가 있는 듯 하다. 세상에 대한 불신이라든지,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불만 의식 등..
이 그림을 보면서 평생을 보이는 것과 그 이면의 것에 대한 탐구했던 세잔처럼 나는 나를 다시한번 되새겨 본다. 나의 내면과 나의 모습, 그 둘 간에 어떠한 이질감이 있는가를…
난,, 난 잘 모르겟어.. 나의 내면과 나의 모습.. 내 생각으론 같다고 생각하는 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