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흔히들 외모지상주의(Lookism)의 원인을 매스미디어로 꼽는다. 나도 이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그렇다면 왜 매스미디어는 이러한 현상을 양산했을까?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첫째는 렌즈가 가지고 있는 광학적(?)인 한계에 그 첫째 원인이 있는것 같다. 그것은 렌즈가 사물자체를 실제보다 부풀게 보이게 하는 왜곡현상을 일컫는 것으로 매체는 이것을 해결하고자 소프트웨어(?)적인 해결방법을 쓴 것이다. 즉 표준적(?)이지 못한 얼굴형의 배우를 통해 표준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두 번째로는 상업주의의 영향인 것 같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기업은 이익생산을 목표로 한다. 매체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는 연장선상에서 보면 유형의 가치재를 생산하지 않는 매체는 결국 이익을 내기 위해서 끊임없는 무형적 가치, 즉 환상을 생산해야 한다. 환상이란 실체가 없는 비현실적인 생각이듯, 비현실적인 외모(?), 비현실적인 체형의 인물을 통해 끊임없이 환상을 생산해 낸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인물들은 실제로도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며,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관객(?)은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 또한 이것은 소비패턴으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나는 매스미디어의 정보전달이라는 순기능을 도외시 한채 Lookism으로 포커스를 맞추고 한정적인 논리를 얘기하고 있다. 여기서는 매체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며, 단지 현상과 그것의 원인에 대해서만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외모지상중의.. 물론 정답은 있다. 사회제도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을 외모에 의한 편견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기회비용을 동일하게 갖도록 하면 되는 것이며, 간간히 외모보다 마음씨가 중요하다는 캠페인성 가치를 전달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과연 가능할까. 무한경쟁 시대에 있어 우리는 끊임없는 구별됨을 발견하고자 하며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외모란 중요한 경쟁력을 도외시 하는 것이 가능하겠냔 말이다. 더구나 비주얼한 사회에서 말이다.

둘째,

오늘날의 사회는 가치관, 시스템, 판단기준 모두모두 해체되어가고 있다. 간접민주주의의 20세기 지난 세월이었다면, 21세기는 기술의 진보를 통한 직접민주주의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모든 사람의 가치가 동등하게 존중되고 동등하게 반영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개개인의 약진(?)은 문화의 취향에서도 반영되고 있는 것 같다. 과거의 미술, 영화, 음악이 한 거장의 일갈(一喝)에 대한 소비자의 성찰과 자기반성의 시간이었다면, 오늘날의 문화소비주체는 개개인의 취향이 생산자의 취향과 얼마나 동일한가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문화의 선택적 취사(取捨)가 중요해 진 것이다. 이것은 비약하면 스타시스템에도 적용가능하다고 본다. 즉 과거의 스타가 지나치게 비범한 스타성에 의존하고 있다면 이 시간의 스타는 우리와 얼마나 친숙한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인터넷 은어로 뚱뚱한 여인을 도도리아라고 부른다. 왜 이렇게 부르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토요일 빅마마 콘서트에는 그들을 지지하는 수많은 도도리아들이 운집(?)해 있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약자였고, 가수 역시 연예계에서 약자에 해당했다. 관객들은 공연내내 누구보다도 열광했고, 가수 역시 그들이 처음 겪었음직할 만한 환호에 열광(?)했다. 물론 나역시 열광했지만, 공연내내 느낀것은 그들의 열광이 빅마마의 노래실력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대리만족에 의한 것에 오히려 가깝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꼼꼼하지 못한 음향점검, 상업적인 공연구성과 티켓판매에도 불구하고 ABBA의 Dancing Queen에 열광하는 것 보면 말이다. 이것은 마치 뮤리엘이 자신의 구질구질한 인생을 잊게해줄때 마다 들려오던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You can dance, you can jive, having the time of your life

See that girl, watch that scene, dig in the Dancing Queen

이 소절이 자꾸만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