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백과사전에는 경제학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 항상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자원의 희소성)에 직면하여, 그 제한된 수단을 가장 유효하게 활용하고자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인적 및 물적 자원이 어떻게 배분되고 소득이 어떻게 처리되는가를 관찰함으로써 이들에 관한 일반적인 법칙을 규명하며, 그 자원의 배분 과정에서 야기되는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자 하는 학문"
즉 경제학은 무한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유한한 자원의 선택을 연구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여기서 바로 경제학의 모순이 존재한다. 즉 인간의 행복을 자신이 추구하는 욕망 분의 취득한 자원이라는 공식으로 나타낸다면 분모는 무한대가 되기 때문에 이 공식의 값은 0이 되고, 이것은 결코 달성될 수 없다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경제학의 출발 자체부터 잘 못 되었다는 데 있다. 결국 이 공식이 값을 가지려면 인간의 욕망을 한계 지워 공식의 값을 양의 정수 값이 되도록 해야 한다. 어쩌면 이러한 이유 때문에 종교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모든 종교는 그 구성원으로 하여금 절제된 행동과 정신을 강조하기 때문에 말이다.
가끔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는 실존에 대해 고민해 본다.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무엇을 위해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가? 나의 모든 행동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내가 생산한 부가가치는 단지 조금 더 나은 것을 위한 교환화폐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조금 더 배기량 높은 차, 조금 더 큰 평수의 아파트, 조금 더 질감 좋은 양복, 심지어 조금 더 좋은 조건과 외모의 아내.. 머 이런 것들 말이다. 물론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이야기하기에 무리가 있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욕구 -예컨대 성욕이나 권력욕- 역시 동일한 방식의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이러다 어설픈 쇼펜하우어가 되는 건 아닌가 싶다.
당신…..넘 어렵잖아..
어렵다에…나두 한표~~ @.@
내가 생각을 좀 줄이랬지???
음…절제된 행동과 정신…-_-
아우디는 언데 태워줄건데?
아,, 머리아프다,, 괜히 열띰히 읽었다,,
젠장. 잘난척하기는~
헉…!! 진짜 안티사이트군..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