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Chile 대사관)

브라질의 저명한 음악학자인 로렌조 마미의 '보사노바의 유토피아적 계획'에서 지적하는 부분에 귀기울여 본다면 약간 해답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로렌조 마미는 재즈와 보사노바를 비교하며 '재즈는 하모니를 중시하지만 보사노바는 멜로디를 중시한다'고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 마일즈 데이비스가 모달 기법을 도입하기 이전의 재즈는 철저히 '화성'에 의거한 까다로운 코드 변주와 즉흥성에 의존한 '프로페셔널'한 음악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반대로 보사노바는 로렌조 마미의 설명처럼 '작곡이 멜로디보다 하위에 놓여지'며, '아마추어리즘에 기대'고, '변주될 수 없는 멜로디를 작곡'하는 음악 스타일이다. 이 설명을 들으면 우리가 수없이 들었던 보사노바 곡들의 커버 버전들에 대한 의문이 자동으로 해소된다. 조빔이 부른 'Desafinado'와 남녀 질베르또가 부른 'Desafinado' 사이에 선율 자체에 거의 차이가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재즈에서는 같은 원곡이라도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원래의 멜로디 자체가 완전히 해체되기도 하고, 조성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노래와 멜로디 중심'인 보사노바와 '코드 중심'인 재즈의 차이점이다.

Blah Blah Blah ….

이런 현학적인 말은 때로는 감각을 마비시킨다. 오늘 갑자기 보사노바가 듣고 싶어졌다. 예전에 남미여행을 할 때 난 그들의 삶의 모습에서 인생을 사는 다른 방법을 배운 것 같다.

눈 내리는 오늘 열대의 포근함이 왠지 그리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