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EL DUCHAMP
Fountain
1917/1964
오랜만에 쓰는 것 같다. 이번에 소개할 작가는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미술의 형태를 변화시키기보다 미술에 대한 개념 자체에 혁신을 가져온 Marcel Duchamp에 대해서 써보련다.
Duchamp는 여러 의미에서 예술의 한계를 타파하고 단순한 물체도 행동도 하나의 관념으로 일관할 때 예술작품이 된다는 것을 입증한 미술계의 이단아였다. 그의 이러한 일련의 행동은 60년대 이후 우후죽선처럼 등장한 레니메이드 열풍을 일으켰고, 개념미술의 시초가 되었다. 그는 합리정신의 부정을 통해 전통성, 기성의 가치 등 기존의 체제의 전반에 대해 도전하고 모든 것을 '제로의 상태'에서 다시 시작할 것을 주장하는 소위 '다다'운동을 탄생시켰다. 그가 속했던 뉴욕다다는 근대 회화에서의 미의 추구를 서구 부르주아적 가치관과 맥을 같이 하여 나타난 개성의 신성화, 창조의 신성화란 과정을 거쳐 허구화되고 있는 상황을 직시했다. 그들은 상아탑의 예술과 예술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예술지상주의를 탈피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모든 요인들, 즉 부르주아의 가치관, 예술=미의 관념, 예술의 자율성이 도래한 삶과 분리된 예술에서 삶에 통합된 예술을 꿈꾸었다. 바로 이러한 욕구를 제일 먼저 포착하여 전통미의 급진적인 부정을 구체화한 미술가가 Duchamp이다.
위의 작품은 Duchamp가 1917년 4월10일, 뉴욕 앙데팡당전에 출품한 ‘샘’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당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는데 결국 심사위원들은 신성한(?) 전시회에 변기를 전시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러한 결정에 Duchamp는 다음의 3가지에서 그 이유를 비난하고 나섰다.
1) 변기가 불결하고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전시가 거부되었다면 그것은 변기에 부여한 인간의 관념이 불결한 것이지, 변기란 실물은 이러한 관념과는 무관한 깨끗한 물체에 불과할 뿐 오히려 그것은 사막의 목마른 자에겐 식수를 닮을 수 있는 멋진 그릇의 의미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2) 변기를 그리지 않았다고 전시를 거부했다면 변기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변기를 잘 그린 그림도 변기를 그대로 찍은 사진도 아닌 변기 그 자체가 아닌가?
3) 변기를 손수 그리거나 만들지 않았다고 해서 전시를 거부했다면 창조의 의미는 반드시 만드는 것에만 있는가? 제시할 수 있는 발견도 창조가 아닌가?
이러한 그의 반론은 정말 기존의 재현이냐 표현이냐 라는 그 당시까지의 미학관에 허를 찌르는 명쾌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그의 통렬한 비난이 오히려 현대의 다양한 미학관을 낳았을 수 있었으리라. 어쩌면 오늘날 예술이 복잡해진 것은 그의 노력이 한 몫 한 거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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