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여인, 1956                                  아기보는 소녀, 1953       아기보는 소녀, 1963

지프가 사태진 언덕길을 꺾어 내리받이 길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그러한 모든 것을 보았던 것이다. 사건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사소한 일, 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것은 가장 강렬한 인상을 가지고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사람들은 늙은 부부였다. 경적 소리에 놀란 그들은 곧 몸을 피하려고는 했지만 너무나도 놀라 경황이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갑자기 서로 손을 부둥켜 쥐고 뒤뚱거리며 곧장 앞으로만 뛰어 달아나는 것이다. 고무신이 벗겨지자 그것을 다시 집으려고 뒷걸음친다. 하마터면 그때 차는 그들을 치일 뻔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때 일어났던 이야기의 전부다.

불과 수십 초 동안의 광경이었고 차는 다시 아무 일도 없이 그들을 뒤에 두고 달리고 있었다. 운전수는 그들의 거동에 처음엔 웃었고 다음에는 화를 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었다. 이제는 아무 표정도 없이 차를 몰고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역력히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잔영(殘影)이 좀처럼 눈앞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누렇게 들뜬 검버섯의 그 얼굴, 공포와 당혹의 표정, 마치 가축처럼 무딘 몸짓으로 뒤뚱거리며 쫓겨 갔던 그 뒷모습, 그리고… 그 위급 속에서도 서로 놓지 않으려고 꼭 부여잡은 메마른 두 손…. 북어대가리가 꿰져 나온 남루한 봇짐을 틀어잡은 또 하나의 손…. 고무신짝을 집으려던 그 또 하나의 손… 떨리던 손…

나는 한국인을 보았다. 천 년을 그렇게 살아 온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뒷모습을 만난 것이다. 쫓기는 자의 뒷모습을…

(이어령 著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中)

예전에 난 한국적인 것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궁금했던 적이 있다. 과연 우리는 누구이며, 다른 문화와 어떻게 다르며, 그것은 어떻게 연유됐을까? 이것이 한동안 나의 지적상상력을 자극했던 적이 있다. 그 때 읽었던 책이 바로 위의 서문이 나오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라는 책이며, 난 이 책을 통해 어렴풋한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 각설하고, 너무 외국 작품위주로 글을 쓴 것 같아 이 번에는 한국 작가의 작품을 골랐다. 바로 박수근이다. 박수근 하면 항상 뒤따르는 것이 바로 서민화가라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하나 더 붙여 한국적이라는 단어를 추가하고 싶다. 가장 서민적이고 동시에 한국적인 작가 박수근. 그에게 다가가보자.

박수근은 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다. 가세가 기울어 학교라고는 지금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보통학교 卒이 그의 학력의 전부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이며, 그와는 동시대를 살았던 수화 김환기, 대향 이중섭, 고암 이응노와는 달리 그는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누드가 없다. 화려한 꽃과 윤기 나는 그릇들로 구성된 정물화도 없고, 아름다운 여성을 모티브로 한 초상 그림도 없다. 우선 이 모티브의 비껴감은 그가 정규 미술교육, 이른바 아카데믹한 미술 수업을 받지 않았음에서 기인한다. 어쨌든 그는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 화단에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그림 그리는 것밖에 없는 그로서는 생계를 위해 미군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야했다. 당시 그와 같이 미군 PX에서 근무했던 소설가 박완서의 회고에 의하면, 그는 늘상 빛바랜 작업복을 입고 다녔으며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선량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박완서의 처녀작 「나목」은 그를 모델로 한 소설이다.

바로 위의 그림 나무와 소녀가  소설 「나목」에 나오는 바로 그 작품이다. 「나무와 두 여인」은 박수근 작품에서도 완벽한 화면구성과 짜임새 있는 구도 때문에 가장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화면의 상반부를 꽉 채운 나무를 중심으로 양옆에 여인을 배치한 대칭구도가 화면에 경건한 엄숙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화면 가운데를 가르는 벌거벗은 나무는 평소에 꽃을 그리는데 인색했던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이다. 이것의 의미는 그가 평소에 남자를 그린 적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 그림이 탄생하던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 당시 한국은 전란으로 여성들은 가장을 잃은 채 집안일뿐 아니라 경제활동까지 떠맡게 된다. 이런 시대상황에서 살아남았어도 충격과 무기력에 참담해진 가장들은 이렇듯 이파리 하나 없는 나목이 되어 그저 묵묵히 아내와 가족의 행운이나 비는 수동적인 위치로 물러섰던 것 같다. 이렇듯 그의 그림에 건장한 남자가 거의 등장하지 않고 많은 경우 나목이 그 구실을 대신한다는 점에서 그의 나목은 당시의 초라한 아버지상을 나름의 방식으로 시각화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가난한 화가였던 작가도 그 벌거벗은 이미지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을 것이다.

기법적으로 그의 그림은 물감을 계속 덧칠해서 표현하는 마띠에르 효과를 사용했다. 이것은 마치 우리나라 화강암의 질감을 느끼게 하는 향토적이면서 거친 듯 소박한 느낌을 주었고, 그의 소재들과 잘 맞아 떨어졌다. 이러한 그의 마띠에르 효과는 위의 두 장의 아기보는 소녀에서도 알 수 있듯, 거칠고 굵은 데에서 점점 부드럽고 자잘한 질감으로 옮겨졌다. 63년작은 그의 만년작품으로 이러한 효과가 완벽하게 고착화된 그림이다. 마치 화강암에 새겨진 삼존불의 느낌처럼 아이는 캔버스에 고착되어 있다. 이것을 유홍준 교수는 청년시절 표현의 사실성이 변함없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지향 즉 의미의 상징성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서양미학사에 예술에 대한 개념 정의는 “예술은 모방이다“와 ”예술은 표현이다“라는 주장으로 압축된다. ”예술은 모방이다”라는 주장이 고전적 미학론의 관점이라면, “예술은 표현이다”라는 주장은 19세기 미술사조의 숨 가쁜 전개로 이룩된 근현대적 미학관점이다. 이중섭이 이중 후자에 해당된다면, 박수근은 전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단 한점도 주관적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출해본 적이 없이 언제나 대상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면밀한 관찰로써, 그의 예술세계를 형상해 나아갔다. 이러한 그의 예술세계는 다음의 그의 말에서 구체화된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갖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 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이런 그의 화풍은 그의 생활에서 연유한 것 같다. 그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아이들과 아내에게 변변한 호강도 못 시켜준 채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책 한권 살 여유 조차없어 자신이 직접 글을 쓰고, 삽화를 그려 넣은 책을 자녀들에게 읽혔다고 한다. 아래의 삽화는 그 당시 만들어진 여러 책속에 삽입된 삽화들이다. 이 때 쓴 몇 권의 책을 난 전시회에서 볼 수 있었는데, 한 가난한 작가의 부성애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가난한 화가 아버지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오늘날 그의 그림은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작품 중에 하나라고 한다. 한 미술전문지의 조사에 의하면 그의 그림은 30년 사이에 무려 5만배나 올랐다고 한다. 1962년에 호당 2,000원하던 그의 그림값이 92년에는 1억 원 이상에 거래되었으니 신화라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그는 살아생전 한국에서는 작품이 도통 안 팔렸고, 오직 미국인 컬렉터들에게 작품을 파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고 하니 이러한 현상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한 대목이다.

그는 말년에 백내장으로 한 쪽 눈을 실명한 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렇듯 극심한 시력저하는 그의 그림의 어두운 색조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국 그는 65년 5월 6일 새벽 지병인 간경화의 악화로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이 때가 그의 나이 향년 51세였다.

요즘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아 많은 후보자들이 저마다 서민 대통령을 자처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서민이 아니라는 역설처럼 서민에 대한 정의도 분분하게 내리지만, 박수근의 삶과 그의 그림처럼 서민을 정확하고 감동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못하는 것 같다. 쓸쓸한 가을 이 글을 쓰니 갑자기 한 가난했던 화가의 안타까움이 전해지는 듯 하다.

2002. 9. 22 새벽 2시 paradi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