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국회 대정부 질문 마지막 날인 14일 국회 본회의장. 시각 장애인인 한나라당 정화원(鄭和元) 의원이 47분간의 질문을 마치자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여야 의원들은 정 의원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김영선 의원은 "김영선!"이라고 이름을 밝히고 격려했다. 앞을 못보는 정 의원을 위해서였다. 열린우리당 강기정 의원은 "정 의원님, 그렇게 잘 하시는 줄 몰랐습니다"고 말했다. 시각 장애인의 국회 대정부 질문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본회의장을 나온 정 의원은 한 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쳐내면서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보좌진에게는 "날아갈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그만큼 점자(點字) 원고를 준비하면서 대정부질의를 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정 의원은 지난 한 달을 꼬박 대정부 질의 준비에 바쳤다고 한다. 지난달 초 대정부 질의를 신청한 뒤 보좌진과 함께 다뤄야 할 주제를 정하고, 토론을 거쳤다. 점자로 된 40쪽 분량의 원고 초안이 온 것은 지난 6일. 이때부터 정 의원은 매일같이 5시간씩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본회의와 똑같은 상황을 가정하고, 리허설을 했다. 보좌진이 국무위원 역할을 맡았고, 정 의원은 실전처럼 질의를 했다. 일반인보다 점자를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약 5배인 점을 감안, 아예 대정부 질의 내용을 외워버렸다.
11일 저녁 7시. 정 의원은 아무도 없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종 리허설을 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좌석에서 단상까지 나가는 시간을 점검하고, 단상에서의 발언 위치, 방향을 확인했다. 국무위원들이 좌석에서 단상까지 걸어나오는 시간이 15초 정도 걸리는 것까지 계산했다.
마침내 질문 순간이 다가왔다. 이해찬 총리가 답변대에 나왔으나 정 의원은 미처 알지 못했다. "이해찬 총리 나왔습니까?" "예" "시각장애인에게는 인기척을 내주는 것이 국제 룰입니다". 그 이후 답변대에 나온 장관들은 "김근태 장관, 나왔습니다"는 식으로 알렸다.
정 의원의 질문은 자연스러웠다. 장관들 답변과 그의 질문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정 의원은 "국내 흡연자를 1200만명으로 계산할 경우 담배 소매점은 흡연인구 80명당 1개꼴이다. 흡연인구를 줄이기 위해서는 담배 점포수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이에 이해찬 총리는 "정 의원께서 적절하게 중요한 말씀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또 "출범 초기 참여 복지 개념을 내세웠던 정부는 이후 거꾸로 가는 장애인정책을 펼침으로써 장애인 불참정부가 됐다"고 정부를 질타했다. 정 의원은 김진표 교육부장관을 상대로는 "장애인 문제를 초·중·고 교육에 포함시켜서 장애인를 예방하자"고 원고에 없는 질의를 하기도 했다. 질문과 답변을 지켜보던 국회 관계자들은 "정 의원이 시각 장애인 맞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대정부 발언이 끝난 후, 기자에게 "단상에 올라서니, 사실 떨렸다. 그러나, 내가 잘못하면 ‘그럼 그렇지, 시각장애인이 뭘 하겠어’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겠느냐. 그럴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3살 때인 6·25 때 피란을 가다가 포탄의 화염이 눈에 들어간 후,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19세 때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좌절감 때문에 죽으려고 자살을 여러 차례 시도했어요. 그러다가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낫다, 살 바에는 열심히 살자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 의원은 침구사로 활동하다가 장애인운동에 눈을 떠 30여년 동안 관련 활동을 해왔다. 부산에 점자도서관, 장애인을 위한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부산시 의원을 거쳐 작년 4월 총선 때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라는 다짐을 써 놓고 있다.
(조선일보, 2005-04-14)
※ 장애에 대한 경험도 없고, 장애우에 대한 특별한 애정도 없지만, 왠지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라는 말에 짠~~해진다.. 값싼 동정인지, 세상물정 모르는 낭만적인 인간애의 발로일지는 모르겠으나.. 소외받는 이가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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