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나는 누군가가 느껴지는 그런 작품 또는 사람을 굉장히 부러워 하던 시절이 있었다.

머 지금도 거기서 많이 틀리진 않지만, 지금과 다른 점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냐에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 자체에 대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시련과 감동을 겪으면서 반영되는 작품의 변화는 내게 때로는 드라마틱 하기까지 했었다.

청년시절 암울했던 피카소가 들어나던 청색시대와 작가적 역량이 집중되면서 나타나던 조형적 변화 내지 큐비즘으로 정의된 환상.

혈기많던 청년시절 램브란트의 자화상과 궁핍한 말년이 들어나는 쓸쓸함과 완숙한 빛의 처리가 느껴지는 자화상

기계적인 음과 형이상학적인 것에 대한 추구가 강했던 Vangelis의 초기 음반과 성숙기의 어쿠스틱한 음원과의 조화에서..

종군기자로 시대의 불의에 맞서 세계를 향해 고발하기 원했던 휴머니즘이 시대의 상처에 대한 증거로.. 인류애에 대한 탐구로 변해갔던 유진스미스의 사진에서

그것은 문학, 음악, 미술, 사진, 건축 등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창작활동에서 들어나는 어떤 정말 어떤 잡히지 않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었다.

변화는 한 작가의 생애 전체에서 강하게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작가 스스로만이 느낄만큼의 작은 변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난 그런 신기루를 한동안 쫓았던 것 같다. 내안의 무언가를 만들기 보다는 신기루 자체를…

어느덧 서른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문득 예전의 글과 사진에서 나는 나만의 신기루를 발견했다. 내가 그토록 추구하고 원했던 그것을…

이 신기루가 언제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변할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 동기가 내게 조금은 덜 아픈 그런 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