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son
c. 15,000-12,000 BC
bison length 77 in. (195 cm)
Altamira, Spain
오늘은 고대 벽화를 분석해서 인간의 시지각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예전에 읽은 책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위의 그림은 기원전 15,000-12,000년 사이에 그려진 그림으로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에서 발견된 창에 찔린 들소의 모습이다. 처음 이 그림이 발견 되었을 당시 사람들은 이 그림을 위작(僞作)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떻게 15,000년 전 미개인들이 이토록 생생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겠는가?” 이런 의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나 자신도 위의 생생한 들소의 근육과 비례, 그리고 창에 찔려있는 순간 묘사를 보고서 적잖이 놀라기도 하였다. 예술사에서 이 정도의 표현을 찾아보려면 한참이나 뒤로 내려와야 한다. 이 그림은 다행히 다른 지역(아프리카, 유럽 등)에서 이와 비슷한 수준의 벽화들이 발견되면서 이러한 누명은 벗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 인류 최초의 예술이 탄생하자마자 단번에 생생한 자연주의 묘사 수준에 도달했다는 건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이 놀라운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은 다음의 구절을 통해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
사물을 지각할 때 우린 오로지 눈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다. 개념적 사유를 하는 인간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知)의 도식‘을 적용하게 된다. 말하자면 시지각 자체가 벌써 개념적 사유라는 색안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그림에서 벌써 우리는 시지각에 끼치는 이런 개념적 사유의 영향력을 볼 수 있다. 어린아이는 결코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거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크게 그리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작게 그리거나 과감하게 빼 버린다. 그들은 ’아는 대로‘ 그리는 셈이다. 그러나 구석기 시대 원시인들은 아직 개념적 사유가 시지각을 지배할 정도까지 발달하진 않았다. 바로 이 때문에 그들은 ’개념적 사유‘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연을 ’보이는 대로‘ 그릴 수 있었다. (진중권 著 미학오디세이)
결국 책에 쓰여진 말대로 우리는 구석기인들의 ‘높은’ 수준의 자연주의가 그들의 ‘낮은’ 수준의 지적 능력으로 설명된다는 역설을 발견하게 된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예전의 '높은' 수준의 순수한 인간관계는 그 당시의 '낮은' 수준 문명도와 관계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어려워….어려워…..
그렇게 어려운 얘기는 아니구.. 우리가 어떤 대상을 그리는 행위는 인간의 시지각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두뇌에서 재조합해서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재조합의 단계에 개념적 사유 즉 어떤 대상에 대한 평소의 관념이 개입한다는 얘기다. 결국 본대로 그린다는 건 현대인에겐 어찌보면 어려운 얘기란 거지.
음… 이해를 돕는 문구.. 고맙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