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 Guevara                                              Five Deaths Eleven Times in Orange, 1964

백과사전류는 Warhol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미국의 화가. 필라델피아 출생. 피츠버그의 카네기공과대학을 졸업하고, 1952년경부터 뉴욕에서 상업디자이너로 활약하다가 화가가 되었다. 62년 시드니 재니스화랑에서 열린 ‘뉴리얼리스트전’에 출품하여 주목을 끌기 시작하고 그 후 만화의 한 컷, 신문보도 사진의 한 장면, 영화배우의 브로마이드 등 매스미디어의 매체를 실크스크린으로 캔버스에 전사 확대하는 수법으로 현대의 대량소비문화를 찬미하는 동시에 비판하여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나에게 예술가로서 그를 평가하라면 나는 이 글의 제목처럼 최고의 사업가 내지 가장 전략적인 예술가라고 평하고 싶다. Warhol을 처음 알게 된 건 94년도로 기억된다. 딱 이맘 때 호암아트홀에서 그의 전시회가 열렸었다. 전혀 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던 상태에서 그의 작품들을 경험하였고, 난 더 많은 미학적 혼란에 빠진 것 같다. 각설하고 그는 대표적인 팝아트 작가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말하는 팝아트는 60년대 초까지의 유행되던 추상표현주의류의 순수미술에 반기를 들고 대중적인 이미지들을 작품에 담기 시작한 사조로서 표현방식을 살펴보면 통조림 깡통, 코카콜라병, 만화, 광고, 헐리우드 스타와 같은 일상적인 소재들을 작품 속에 그대로 제시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작품을 단순히 보고 즐길 수 있게 하였다. 특히 팝아트는 현실과 유리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온 서양의 전통적인 예술관을 극복하고 예술을 일상적인 삶과 일치시키고자 하였다. 그럼 팝아티스트들은 왜 이러고자 하였을까? 그것은 시대적 상황 즉 60년대의 소비지향 사회에서 대량소비체제의 산물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예술의 상품화를 인정하고 그 상품적 속성을 드러내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의 발현(發現)이었던 것이다.

다시 Warhol로 돌아가자. 그는 작품제작 방식마저도 공장제 방식으로 그가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조수들이 공장처럼 마구 찍어내었고, 심지어 그의 어머니는 Warhol이 가르쳐준 대로 사인을 연습해 아들 대신 사인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곤 한다. 또한 그는 제작단계에서 발생하는 우연적인 효과, 이를테면 농도의 차이, 선명도, 기계 상의 실수 따위를 그대로 작품의 일부로 승인했다.

이렇듯 그의 사뭇 가벼워 보이는 예술관과 태도는 과연 어떤 것을 나타내고 자 하는 것일까? 위의 작품 "Five Deaths Eleven Times in Orange"을 보면 전복된 자동차와 다섯 명의 피투성이 된 남녀의 모습이 오렌지 톤의 화면에 실크스크린화 되어 있다. 그러나 그 화면엔 죽음의 공포나 끔찍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영상매체의 위력으로 이슈보다 이미지가 우선하는 시대에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의 전달 과정에서 의미가 탈루(脫漏)되는 현상,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 조건화되고, 자폐적이 되어가는 인간상황을 작가가 나타내고 자 한 것이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 유명인들의 사진이나 코카콜라병과 같은 대중적 이미지의 차용을 많이 볼 수 있는 데, 이것은 현대의 젊은이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위해 특정한 청바지를 구입하지만 동시에 그 청바지는 수백만벌씩 전세계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대중 개인주의’의 단면임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제 마무리를 해 보자.  Warhol은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하고 이미지를 대량 복제함으로써 이제 지난 시대의 예술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음을 예고하고, 예술의 개념이란 예술이 가지는 지평을 확장하는 것이라 얘기하고 있다. 결국 그는 예술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가능한 시대의 도레를 암시했다. 모든 것은 예술일 수 있고, 또 예술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 아이디어로 굉장한 성공을 거둔다. 그의 성의 없는(?) 초상화 작업은 헐리우드 스타들의 선망의 작품이 되게 되고, 이와 함께 그의 명성은 높아만 갔다. 어떤가 21세기까지의 예술계를 통틀어 최고의 전략가라 할 만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