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et, Edouard

The Balcony

1868-69

Oil on canvas

170 x 124 cm

Musee d'Orsay, Paris

요즘 매일 매일 이 공간에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을 올리면서 밤에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사실 난 지금껏 딱히 일기라는 것을 써본 적 없다. 그냥 하루하루를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공상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렇게 활자화 시켜 정리를 하다보니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어떤 그림을 올릴까? 하는 것도 즐거운 나의 상상의 한 부분이 되었으니 말이다.

위의 그림은 마네의 the Balcony라는 그림이다. 사실 난 인상파 그림을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상주의의 등장은 미술사에 있어 하나의 획을 긋는 중요한 것이었고, 특히 이 그림 – the Balcony는 그것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그림이기에 정리를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 생각에 이것을 가지고 얘기를 해 볼까 한다.

세계를 바라볼 때 어떤 흐름은 존재한다. 가장 빠르고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역사라고 한다면.. 역사라는 흐름 뒤로는 철학이라는 것이 흘러가고, 그 뒤를 바짝 쫓아가는 것이 바로 미술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역사적인 사건은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생각은 미술로서 표현되는 것이 바로 사회와 세계의 흐름인 것 같다. 물론 그 뒤를 다양한 것들(문학, 음악, 영화, 건축 등)이 뒤 따르고 있지만, 표현적인 한계와 그 실험성의 정도 차이로 인해 나에게는 미술보다는 조금 변화가 느린 것처럼 보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인상파의 등장은 19세기(1860-90)경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19세기의 사회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계급의 영향력 강화(영국의 노동자 파업과 프랑스의 공화정 수립)와 경제사적으로는 벤담의 영향을 받은 신고전파의 자본주의 옹호론과 마르크스의 비판론이 대립했던 시기이며, 철학적으로는 자연과학의 방법을 철학에 적용하려는 실증주의가 만연했던 시기이다. 이러한 시대상에서 미술은 커다란 변화를 요구받게 된다. 특히 그 시발점이 된 것이 사진술의 등장으로 사진술의 발명은 그 당시까지 미술이 담당하던 권력자나 재산가의 초상화로서의 미술에서 점차 사진술이 담당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으로의 탐색을 요구받게 된다. 또한 실증주의적 사고방식은 고전적 회화의 표현방법(명암의 표현과 입체감의 표현 등)이 인공적인 조건하에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자각하게 하였다. 결국 마네, 모네와 같은 화가들은 현실의 재현을 다른 방법에서 찾게 된다.

인상파 그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다양한 색조의 조합과, 색채와 형태들의 다양한 구성, 콘트라스트의 조화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그림 the Balcony를 보면 인물의 머리는 코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을 정도로 평면적이다, 이런 것을 그 당시 처음 본 사람들은 아마도 무시하고 조롱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야외의 밝은 햇빛 속에서 보면 둥근 형태조차도 평면적으로 보인다. 마네는 이것을 노린 것 같다. 결국 마네는 입체감과 깊이 감을 콘트라스트의 차이로 나타내었고, 그것은 발코니의 난간 색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고전적인 기법으로 따지면 난간의 색상은 지나치게 밝고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색상과 화면을 가로지르는 구성이 오히려 인물을 더 뒤로 가게 만들었고, 화면전체에 깊이 감을 주게 되었다. 이렇듯 인상파의 그림은 그 기법자체가 가지는 파격 성으로 인해 그 당시에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실험이 있었기에 오늘날 근대회화가 발전될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다. 그 당시 그들을 비난했던 비평가의 이름은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으니 말이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위해 예전에 읽은 책을 뒤적이고 쓰다보니.. 힘들다. 더구나 이번꺼는 시작을 너무 크게 잡았더니 나중에는 정리가 안 되는 듯싶다..쩝.. 다음부터는 그냥 그림만 올려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