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onardo DiCaprio 1999

Julia Ormond. New York 1995

Tom Cruise 1999

Jakob Dylan 1998

Giorgio Armani 1990

Oscar de la Hoya 1996

Robert Altman. New York 1994

Robin Williams. New York 1990

The Wallflowers 1998

Veronique Pittman with daughter Lucy

※ 진동선의 사진이야기에 보면 얼굴 즉 초상의 의미를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얘기하고 있다.

첫째, 초상은 이별을 전제로, 죽음을 전제로, 소멸을 전제로 한다. 시간의 흐름과 죽음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을 넘어기 위한 '부재'를 전제로 한다.

둘째, 초상은 영원한 젊을을 전제로 한다.

셋째, 초상은 차이를 드러내는 정체성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세번째 즉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초상에 대한 예술적 의미가 아닐까 싶다. 이것은 개개인의 얼굴은 각기 서로 다르다는 물리적인 사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얼굴을 통해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는 본질적인 정체성마저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의 외모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이 말 역시 인간의 얼굴이 단순한 구별됨 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같은 연장선에 있는 말 일것이다.

Patrick Demarchelier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유명한 패션 사진작가라는 점, 다수의 저서와 전시회를 개최했다는 점 밖에 없다. 어쩌면 여기에 올려진 사진이 그의 대표작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한 인간의 얼굴에는 그의 삶의 궤적이 들어난다는 것, 또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지에 대해서는 고뇌가 필요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