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진 브로치

소풍을 이틀 앞둔 월요일 저녁, 마릴라는 콩깍지를 까면서

즐겁게 노래 부르고 있는 앤을 향해 이상하다는듯이 물었습니다.

"앤, 내 자수정 브로치 못 봤니? 어제 저녁 교회에서 돌아온 다음

바늘겨레에 꽂아 놓은 것 같은데, 찾을 수가 없구나."

"저어____, 제가 오늘 오후에 아주머니가 후원회에 가셨을때 보았어여.

"만졌니?"

마릴라는 엄하게 물었습니다.

"예, 얼마나 예쁜가 보려고 가슴에 달아 보았어여."

"그런 짓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도 없을 때 내 방에 들어가다니,

그게 나쁜 짓인 줄 몰랐니?

더더구나 자신의 것도 아닌 브로치를 함부로 만지다니 말이다.

브로치를 어디에 두었니?"

"장롱 위에 그대로 놔 두었어여. 그리고 저는 1분도 달고 있찌 않았어여.

잠깐 달아 본 것 뿐이라구여.

"너는 원래 있던 곳에 돌려 놓지 안았어.

장롱 위의 어느 곳도 보아도 브로치는 없었다.

바깥으로 가지고 나간 것은 아니냐, 앤?"

마릴라는 다시 한 번 마음에 짚이는 곳을 모조리 찾아 보았으나,

아무 데에도 없었기 때문에 다시 부엌으로 와서 말했습니다.

"앤, 브로치는 없다. 제일 마지막으로 브로치를 만진 사람은 너야.

도대체 어디에 두었니?

당장 사실대로 이야기 하거라."

"분명히 원래 있던 곳에 갖다 놓았어요.

바늘겨레에 꽂았는지 도자기 쟁방에 놓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갖다 놓은 것은 분명해여."

앤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다시 한 번 찾아 보기로 하지.

네가 브로치를 갖다 놓았다면 분명히 있을 테니까.

만일 없다면 네가 갖다 놓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아니에여. 그런 짓은 절대로 하지 않았어여.

방 바깥으로는 가지고 나오지 않았어여. 정말이에여."

앤은 마릴라의 화난 눈초리에도 기가 꺽이지 않고,

당당하게 마주 쳐다보면서 조용히 말했습니다.

마릴라에게는 그것이 자신을 무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더욱 날카로운 말투로 앤을 추궁했습니다.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그렇지. 앤? 나는 다 알고 있다.

사실을 말할 마음이 생길 때까지

네 방에 가 있거라."

"이 콩도 가지고 갈까여?"

앤은 온순하게 몰었습니다.

"아니다. 내가 깔 테니까 놓아 두어라."

앤이 방으로 가자, 마릴라는 이것 저것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저녁 식사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그날밤 마릴라는 다시 한 번 앤에게 브로치를 어디에 두었느냐고

물어 보았으나, 앤은 모른다고 우길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릴라는 더욱더 앤의 짓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마릴라는 매슈에게 브로치 이야기를 했습니다.

매슈는 몹시 난처해하는 표정으로,

"마릴라, 네가 착각한 것이 아니니? 아니면, 장롱 뒤에 떨어진 것이 아닐까?"

하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마릴라는 한층 더 우울해져서 앤의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앤은 여전히 브로치를 가지지 않았다고 계속 우길뿐이었습니다.

무거운 공기가 감도는 하루가 지나고 밤이 되자,

참기 힘들어진 마릴라는 마음을 굳게 먹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사실대로 말하기 전까지는 이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서는 안 된다, 앤."

"그렇지만 내일은 소풍 가는 날이에여."

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설마, 소풍을 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은 아니겠지여?

오후에는 내보내 주실 거지여? 그렇게 해 주신다면

그후로는 마릴라가 시키는 대로 언제까지고

이곳에 있겠어여.그렇지만 소풍만은 꼭 보내 주세여."

"소풍이든 어디든 사실대로 말하기 전까지는 갈 수 없다, 앤."

"어머나, 마릴라."

앤은 절규하듯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릴라는 문을 닫고 나가 버렸습니다.

수요일 아침은 날씨가 아주 좋아 소풍 가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마릴라가 아침 식사를 가지고 앤의 방으로 들어가자,

앤은 침대 위에 앉아 굳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마릴라, 저는 전부 다 말할 준비가 되었어여."

"아아!"

마릴라는 놀라 쟁반을 테이블 위에 놓았습니다.

또다시 자신이 선택한 벌이 성공했으나, 이 성공은 마릴라에게는

몹시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럼, 이야기 해보거라. 앤."

"제가 자수정 브로치를 가졌어여."

앤은 마치 외운 교과서를 암송하는 것 같은 어조로 말을 계속했습니다.

"방에 들어갔을 때에는 가질 생각이 없었어여.

그런데 제 가슴에 달아 보았을 때 너무나 예뻤기 때문에,

유혹에 지고 말았어여. 다이아나와 숲에서 놀 때 이것을 달고 있으면,

내가 공주님이라고 상상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어여. 다이아나와 저는 장미 얼매로 목걸이를 만들었지만,

그런 것은 자수정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지여. 그래서 제가 브로치를 가졌어여.

저는 아주머니가 돌아오시기 전에 제자리에 돌려 놓으려고 했어여.

조금이라도 오래 달고 있고 싶어서 일부러 길을 돌아

"빛나는 호수"에 있는 다리를 건널때 다시 한번 자세히 보기

위해 브로치를 떼었어여. 그런데 브로치가

손에서 미끄러지더니, 자색으로 빛나면서 영원히 "빛나는 호수"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어여. 이것이 저의 고백이에여."

마릴라는 불끈불끈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앤은, 마릴라 자신의 소중한 브로치를 가지고 가서 잃어버렸는데도,

조금도 후회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한

얼굴로 잃어버렸을 때의 상황을 자세하게 들려 주었던 것입니다.

"앤, 너처럼 나쁜 아이가 있다는 마은 지금까지 들어 본적도 없다."

마릴라는 애써 차분하게 말하려고 했으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습니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해여."

앤은 태연 자약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여. 부디 당장 벌을 두세여. 저는 아무런 걱정없이 상쾌한 기분으로 소풍을 가고 싶어여."

"소풍이라고? 정말 어처구니없구나! 소풍은 보내 줄수 없다. 그것이 벌이야."

"오오, 소풍을 보내 주시지 않는다고여?"

앤은 펄쩍 뛰며 마릴라에게 매달렸습니다.

"제가 고백하면 소풍을 보내 주신다고 하셨잖아여. 그래서 고백한 거예여. 부탁이니까

소풍만은 보내주세여. 그루에는 어떤 것이든 좋으실 대로 벌을 주세여.

제발 소풍만은 가게 해 주세여!"마릴라는 앤의 손을 차갑게 뿔치고서 몹시 화가 난 듯이 말했습니다.

"그렇게 애써 조를 필요 없다. 한번 안 되다고 했으면 그런 줄 알아.

이데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

마릴라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앤은 손을 마주 잡고 귀청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더니, 침대에

엎드려 몸부림치며 울었습니다.

"어이구, 이게 어찌 된 일이야?"

놀란 마릴라는 급히 서둘러 방에서 나왔습니다.

' 저 아이가 아무래도 정신이 어떻게 됐나봐.

제 정신이라면 저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텐데.'

몹시 우울해진 마릴라는 쉴새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점심 식사 준비가 다 되자 마릴라는 층계 아래로 가서 앤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앤은 눈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점심 식사는 필요 없어여. 마릴라. 먹을 수 없어여. 슬픔에 가득 잠겨 있는걸여. 먹으라는 말을 하지 말아 주세여

괴로움을 안고 있는 사람에게는 돼지고기 조림이나 야채는 너무 현실적인 거예여."

마릴라는 너무 화가 나서 매슈에게 푸념을 마구 늘어놓았습니다.

"글쎄, 저 아이가 잘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어리잖니.

그리고 예의 범절이라는 것을 배우지 못했으니까 너그럽게 봐 주는 게 어떻겠니?"

하고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지금은 예의 범절을 배우고 있잖아여."

마릴라가 반박했습니다.

침울한 기분으로 점심 식사를 마친 마릴라는 문득 월요일날

후원회에서 돌아와서 외출용의 검은색 레이스 숄을 벗을때 숄이 아주 조금 찢어져 있었던 것을 생각해 냈습니다.

수선해 놓으려고 트렁크 안에서 숄을 꺼내자, 창가에 우거져 있는 칡잎 너머로 비쳐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무엇인가가 반짝반짝 자색으로 빛났습니다.

마릴라는 놀라고 당황하여 그것을 얼른 잡아당겼습니다.

레이스 실의 한 가닥에 휘감겨 매달려 있던 것은 자수정 브로치였습니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겟네."

마릴라는 어안이 벙벙하여 중얼거렸습니다.

"밸리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는 브로치가 여기에 있잖아?

저 아이가 왜 그런 거짓말을 했지?

이제서야 어렴품이 생각이 나는군. 월요일에 숄을 벗어 잠시 동안 장롱 위에 두었었어. 그때 브로치가 걸린 것임에 틀림이 없어."

마릴라는 브로치를 손에 들고 앤의 방으로 갔습니다.

앤은 실컷 울고서 힘없이 창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앤, 지금 막 검은 레이스 숄에 걸려 있는 브로치를 발견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네가 한 그 장황한 이야기는 어떻게 된거니?

마릴라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제가 사실대로 말하기 전까지는 여기에 있어야 한다고 마릴라가 말씀하셨기 때문에, 저는 소풍만은 꼭 가고 싶어서 제가 브로치를 가졌다고 거짓말을 했어여. 어젯밤 침대에 누운 뒤에 뭐라고 고백할까 생각해 봤는데, 되도록이면 재미있게 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여. 그리고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말해 보았어여. 그렇지만, 아주머니는 소풍을 보내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저의 고생도 헛일이 되어 버렸어여."앤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마릴라는 참으려고 했으나,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기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앤, 너한테는 두 손 다 들었다. 정말 미안하게 됐구나.

너는 지금까지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으느니까,

네말은 믿어 줬어야 했는데 말이야. 그래도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을 거짓으로 고백하는 것은 잘못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나니까, 만일 네가 나를 용서해 준다면, 나도 너를 용서해 주마. 자아, 이제 빨리 소풍 갈 준비를 해라."

앤은 불꽃이 튀어오르는 것처럼 펄쩍 뛰었습니다.

"오오, 마릴라? 정말 고마워여. 그런데 너무 늦지 않았을까여?"

"아니다, 아직 2시인걸. 차 마시는 시간까지는 한 시간이나 남았어. 얼른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 입어라. 내가 바구니를 가득 채워줄 테니까. 그리고 제리에게 마차로 너를 소풍 가는 곳까지 데려다 주라고 할께.

"아아, 마릴라. 5분 전까지는 너무나 비참하여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어여. 그렇지만 지금은 천사로 만들어 준다고 해도 거절할래여."

그날 밤 앤은 피곤하기는 했지만 몹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행복에 젖어 돌아왔습니다.

"저는 다시없이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왔어여. '다시없이 유쾌하다'는 말은 오늘 새로 배운 말이에여.메리가 쓴 말인데, 느낌이 잘 나타나 있는 것 같지 않아여? 모든 것이 다 근사했어여. 차를 마신 후에 해먼 앤드류스가 우리를 보트에 태워 주었어여.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먹었어여.아이스크림은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맛이었어여, 마릴라. 아이스크림은 정말 숭고한 것이에여."그날밤, 마릴라는 매슈에게 모든 것을 다 숨김없이 이야기하고는 끝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해여. 그리고 좋은 공부를 했어여.앤의 그 '고백'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만 웃고 싶어져여. 웃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여. 저 아이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여.

앞으로 좋은 방향으로 자라갈 거예여.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집이든 간에 저 아이가 있는 곳에서는 심심할 일이 없다는 거에여."

* paradiso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3-02-24 2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