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acroix, Eugene
The Death of Sardanapal
1827
Oil on canvas
392 x 496 cm
Musee du Louvre, Paris
한때 미학에 대해 관심 있던 시절이 있었다. "과연 어떤 것이 아름다움인가? 美를 평가하는 가치기준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기억이 있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이 책 저 책을 기준을 삼고, 그 책에 있던 내용이 나의 미학적 가치기준인 양 혼돈하고, 다시 휩쓸리고를 반복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진리란 없다는 역설적 명제처럼 미학적 가치기준 역시 나름대로의 가치기준에 불과하다는 포스트 모던적인 미학론이 현재의 나의 중간 결론이다. 모든 것이 예술일 수 있고, 또 모든 것이 예술이 아닐 수 도 있지 않을까? … 역시 미학은 골치 아픈 것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그냥 그림 얘기나 해 볼까 한다. 난 낭만주의 시대의 그림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항상 격양된 터치와 묘사 그리고 그 화려함은 예술에 있어 다른 것을 기대하는 나에게 있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그림-사르다나팔의 죽음(The Death of Sardanapal)은 내가 이 그림을 처음 소설에서 읽었던 기억뿐 만 아니라, 드라마틱한 구성과 인물의 표정묘사 그리고 그 상상력에 매료되어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역시 회화에 있어서 데생보다는 색채가, 지식보다는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미학적 기준을 가진 들라크루아(Delacroix : 1798~1863)답게 화면엔 상상력과 색채가 넘실댄다.
내가 이 그림을 처음 접했던 김영하씨의 소설에서는 이 그림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사르다나팔의 죽음은 성도의 함락을 눈앞에 둔 바빌로니아의 왕이 무사들을 시켜 그의 왕비와 애첩들을 살해하는 장면이다. 한 건장한 무사가 냉정한 표정으로 몸을 한껏 젖힌 전라의 연인을 등 뒤에서 껴안고 위로부터 수직으로 칼을 내리꽂고 있다. 가로 5미터, 세로 4미터의 화면은 살육의 잔치로 가득하다. 화면 왼쪽에는 왕의 애마를 끌어내는 흑인 무사의 모습이 보인다. 말도 곧 살해될 운명에 처해있다."
이 그림에서 특이한 점은 왕의 표정인 것 같다. 온통 화려하고 밝은 색조로 구성된 여인의 살해 장면과는 달리 어두운 색조로 침대에 누워 즐기듯 관조적으로 그 살육의 현장을 바라보는 장면은 죽음을 앞둔 자의 모습으로는 사뭇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들라크루아는 왜 사르다나팔 왕을 이렇게 묘사했을까? 그는 죽음을 초월한 왕의 모습을 그린 것일까? 아님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죽음을 주재하는 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일까? 나로서는 호기심가는 대목이다. 어쨌거나 같은 소재를 3류 화가가 그렸다면 괴로워하는 왕의 모습을 그렸을꺼라는 평가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관조적인 왕의 모습이 이 그림에 대해 더욱 드라마틱한 상상을 가능하게 하니 말이다.
왕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