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마살이 끼었는지 수차례 배낭여행이다 머다해서 돌아댕기던 내가.. ISO회의로 일본갔다온 이후로 이 대한민국 땅덩어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행은 가고 싶은데.. 갈 처지는 못되고, 잠도 안오는데 예전에 갔다온 곳이나 정리해 봤다.

※ 대학내내 고아였던 내가 1994년 12월, 부모님 뵈러 간다는 핑계로 처음으로 해외여행 다녀오심. 장장 26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가야 볼 수 있는 곳. 칠레. 계절도 반대라 이 때 한참 여름이었는데..

정작 부모님하고는 한 일주일도 같이 있지 않고, 부득부득 우겨서 배낭메고 꼴랑 단돈 몇 푼 들고 무작정 뛰쳐나옴. 한 두어달을 꼬박 혼자 돌아다녔는데.. 저 땅덩어리 안가본데가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스페인어는 Adios Amigo라는 걸 어느 영화에서 본 게 전부인 내가 온갖 눈치와 임기응변으로 나중엔 현지인에게 "말은 잘 못하지만 잘 알아듣는다"는 얼토당토 않는 극찬까지 들으심. 죽을고비도 있었고, 워낙에 준비없이 떠난 관계로 별별 일이 다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참 좋았던 시간이다.

위도상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아래에 위치한 푼타아레나스에서 보낸 시간, tores del paine의 빙하가 녹은 옥빛 호수, 우여곡절 끝에 겨우 도착한 빙하의 위용, 세계에서 가장 건조하다는 Atacama 사막의 분홍색 플라맹고와 오아시스, Valle de la Luna의 아름다움과 그 곳에서의 야영… 모두모두가 지금은 너무도 귀한 추억이다.

※ 1998년 6월경 이었던가 제대하자 마자 바로 미국비자 만들고 나서 다시 또 부모님 뵙는다는 핑계로 칠레로 갔다. 물론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은 전과 동일할 정도로 짧았고, 칠레의 왠만한데는 다 가 본 관계로 바로 페루로 날라갔다. 워낙에 치안이 안좋기로 소문난 나라인데다 워낙에 못 사는 나라라.. 한 두어달을 항상 사주경계 하고 다녔던 것 같다.

생각보다 컸던 수도 리마, 사막에 그려진 나즈카 유적을 비행기를 타고 봤던 기억,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티티카카 호수와 그곳의 수상족들.. 그리고 죽을때까지 잊을 수 없는 쿠스코 유적. 비자문제로 현지교민 분들과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통과했던 칠레-페루간 국경과 그 곳을 달렸던 콜렉티보의 추억. 다시 볼수 있을런지..

※ 제대하면 주변의 친구들을 봐도 그렇고, 또 1년 해봐야 늘을 영어실력이란게 뻔하기에 거금 들여가면서 팔자편한 어학연수 가느니 무조건 미국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영어도 배우고 여행도 한다는 계획으로 힘들게 버틴 군생활 이었는데, 정작 제대를 했더만 LA에서 햄버거 샵을 하셨던 고모님은 샵을 정리하신지 예전이었었다.

난 일단 서부를 여행하고 칠레로 들어갔다. 칠레에서 다시 페루로 떠났고 다시 칠레로 돌아와 어떻게 할까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아무도 아는 사람 없지만, 단지 일자리가 많고,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뉴욕으로 무작정 떠났다.

뉴욕으로 갈때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 "일자리 찾아볼 때까지 찾아보고 정 안되면, 이 돈으로 여행이나 좀 하고 귀국해라" 그러시면서 건네주신 1500여불 가량. 그거들고 생판 첨 본 뉴욕이란 곳에 갔다. 아는 사람 절대 없지만, 건너건너 온갖 인맥 다 동원해서 뉴욕의 어느 한인교회에서 한 일주일 가량을 얻어자면서 일자리를 구했다.

IMF시절이라 갑자기 불어난 한국인으로 취직이 쉽지 않던 시절 천신만고 끝에 일자리를 구하고, 반지하 허름한 방을 구하고, 밥을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약간의 식기도구를 산 후 그렇게 나의 미국생활은 시작됐다. 다행히 운이 좋아서 textile 중계무역을 하는 사무실이었고, 난 잡스러운 일을 도맡아 했다. 도움 얻은바 열심히 일했고, 덤으로 교회에서 기타반주 까정 하는 봉사생활을 했다.. 세상에..

고맙기는 그런 나를 잘 봐준 울 사장. 한달 받는 내 월급의 절반이나 되는 학원비를 내주며 NewYork의 CES(요즘 박경림 여기 다닌다 더라)에 입학 시켜줬고, 짧았지만 다행히 영어공부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6개월여를 일했고, 귀국시점이 가까워서는 정말 악착같이 모은 돈 전부로 컴퓨터와 오디오를 사고 비행기표까지 사고, 그러고도 남는 돈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계절적으로 무척 춥던 시기였지만,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돌아다닌 여행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것 같다.

오대호의 차가운 바람을 맞을 수 있었던 시카고, 눈이 무척 많이 내렸던 클리브랜드와 워싱턴,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뉴올리언즈에서의 휴식. 미시시피 강과 한적한 공원에서 섹스폰을 부르던 흑인 노인이 지금도 눈에 아른거리는 듯 하다.

※ ISO국제 회의때문에 2001년 추석쯤에 일본 후쿠오카에 갔다. 비행기표가 없어 부산에서 배를 타고 가서인지 모처럼만의 외국여행이 기분도 나지 않았다. 하루종일 회의하고 숙소로 돌아오면 하루가 저물어버리는 생활을 며칠했고, 회의기간 막판에는 겨우 짬을내서 도시내를 대충 훑어볼 수 있었다.

후쿠오카 돔과 몇몇 잡지에서만 볼 수 있었던 유명 건축물들 그리고 한없이 입맛에 안맞는 닝닝한 일본 음식들. 그렇게 일본여행(?)은 끝이었다.

※ 지나보면 모든 것이 다 추억이 되고 아름답게 되나보다. 하나하나 쓰면서 기억을 되짚으니 모든것이 살아서 꿈틀대는 듯 하다. 아무튼 나중에 우리나라 여행한거도 함 정리해 봐야 겠다.ㅎㅎ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해도 난 뱅기 많이 태워주는 일을 해야겠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