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본머스 & 풀(Bournemouth & Poole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1982년 수석 졸업했다. 이 런던 태생의 포토그래퍼는 원래 의사가 되려고 의대에 진학했었던 과거가 있다. 1980년대 후반 요지 야마모토의 아트디렉터인 마크 아스컬리(Marc Ascoli)와 함께 진행한 12개의 카탈로그 작업은 신인이었던 그를 세계적인 포토그래퍼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1998년 ‘파워 오브 포토그래피(The Power of Photography)’를 수상했으며, 2001년 ‘크리에이티브 리뷰 얼티메이트 리그 테이블(Creative Review Ultimate League Table)’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작가로 선정되었다.

Interview with 닉 나이트

포토그래퍼라는 타이틀이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을 설명하기에는 매우 제한적인 것 같다.

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 문제를 해석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은 어떤 직업이나 기술도 아닌, ‘커뮤니케이션’이다. 내 주변을 둘러싼 세상과 대화하려 노력하고, 이 소통을 위한 방법들을 구축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떤 직업으로 언급되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인생의 분노, 갈망, 사랑 혹은 두려움을 표현해낼 뿐이다. 이런 결과물들이 간단하게 각각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영역을 규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이해하는데 근본적인 방해 요소가 될 것 같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포토그래퍼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대학교 때 사진을 전공했고, 굵직한 사진 작업들로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첫 주요 작품은 ‘스킨 헤드(Skinheads)’(1980)로, 사실 이조차도 필름 위에 그림을 그린 것이니 제한된 사진작가로서의 역할만을 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심지어 자신을 ‘카메라 학대자’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사진의 기술적인 부분들이 싫다. 골치 아프고, 복잡하다. 가끔은 이것이 나와 피사체 사이에 끼어드는 플라스틱과 금속 조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물론 이것의 작동과 작용에 감동받는다. 그러나 이 영역 자체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당신은 사진에 디지털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접목한 첫 세대의 대표주자다. 어떤 면이 매력적이었나?

이것은 그저 다른 도구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다른 렌즈를 끼우는 것과 같다. 다른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게 그렇게 큰 발전이나 변화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유화에서 수채화냐, 혹은 흑백 필름에서 컬러 필름으로의 변화냐 같은 작은 차이일 뿐이다. 이것보다는 차라리 디지털 이미지가 인터넷을 만나 오늘날 어떤 일들을 수행하고 있는지가 더 큰 변화이자, 흥밋거리이다.

이것을 기존의 사진과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10여 년간 사람들은 전통적인 사진의 의미가 무엇인가에만 집중하지 않았나 싶다. 사진이 일상의 진실성에 관한 것이라는 관점으로 생각한다면 큰 논제 일 수 있지만, 이런 것조차 탁상공론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진에 디지털 이미지를 입히는 것은 그저 우리가 보고 인지하는 것을 표현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몸, 사용하는 카메라 그리고 피사체와의 상호 작용 등 디지털 이미지는 이러한 진실성을 표현하기 위한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를 사용하느냐 아니냐는 문제가 아니다.

당신은 포토그래퍼로서 여러 명의 아트디렉터와 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피터 새빌, 마크 아스컬리, 존 갈리아노. 이들은 항상 내가 찾아가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내가 보는 방식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다른 각도로 보게 된다. 그래서 알렉산더 매퀸과의 작업은 재미있고, 요지 야마모토와의 작업은 흥미롭다. 이들과 나 사이에 아트디렉터냐, 포토그래퍼냐 하는 명찰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서로 신뢰를 기본으로 한 ‘관계’ 속에서 일한다. 그 밖에도 질 샌더, 마틴 싯봉, 테리 존스 등 얘기하자면 끝도 없다.

당신과 그래픽 디자이너 피터 새빌의 협업은 유명하다. 그와의 작업은 어떠한가?

그는 사물을 통찰하는 분석 능력이 대단하다. 명확하게 사물을 바라본다. 이것이 나와 다르다. 나는 명확한 결론을 가지고 작업에 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음성학적이고 포괄적으로 다가간다. 문제를 풀기 위해 한 단계씩 밟으며, 주변을 돌아본다. 문제의 핵심에 곧장 달려 들어가는 그의 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것이 즐겁다.

초현실적 분위기의 피렐리 2004년 캘린더가 인상적이다. 피터 새빌과 함께 작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피렐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처음에는 프로젝트에 관해 불만이 많았다. 기존의 피렐리 카탈로그들이 남성 중심의 관점에서 여성에 대한 환상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때 피터가 나에게 “그럼 여성 자신이 갖는 환상이라는 관점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면 어떨까?”라고 말했고, 나는 즉각적으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거기다 내가 “음, 한사람보다는 여럿의 환상이 낫겠군”이라고 덧붙이고, 또 그가 거기에 아이디어를 더해 ‘피렐리 2004’가 완성된 것이다. 결국 잘 알려진 14명의 여인을 섭외했다. 카드린 드뇌브, 비요크, 트레이시 에민 등. 그들이 나에게 자신의 성적 환상을 이야기해줬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여성들의 성적 환상을 듣는다는 것은 이상한 경험이었다. 달력 뒤에 참여자의 명단을 공개했으나 순서대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니, 괜히 추측하지 마시길 당부한다.

아트디렉터와 매번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을 텐데, 그럴 땐 어떤 식으로 의견을 조율하나?

이것은 아마도 일의 본질에 관한 질문 같다. 항상 왜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알아야 한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그 협업이 실제로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의견의 불일치란 오로지 이해와 커뮤니케이션의 부족에서 온다. 더욱 풍성한 대화를 나눌수록 의견의 불일치는 사라진다.

아무리 협의를 거치더라도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부 혼자 하고 싶다고 생각해보지는 않았나?

결코 없다. 모든 것은 커뮤니케이션이 목적이다. 나는 혼잣말을 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조사하고 싶지도 않다. 일의 즐거움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데 있다. 아트디렉터, 저널리스트, 영화감독, 패션 디자이너 혹은 정말 어떤 기술이 없는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하고, 인간이라는 종족에 관하여 궁금한 것이다.

환상적인 비주얼을 만들어내는 작업 비결이 궁금하다.

사람들이 내 작업을 매력적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생은 흥미롭기에, 살아가는 데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오는 감정들이 있다. 어떤 아침은 우울하고, 앞이 캄캄하고 저주받은 생 같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활기 있게 문을 나서게 된다. 이 모든 폭발적인 감정이 작업에 깔려있다.

쇼 스튜디오를 간단히 소개해달라.

쇼 스튜디오는 3개의 중요한 ‘탐구’의 명제가 있다. 첫째는 ‘퍼포먼스’, 둘째는 ‘프로세스’ 그리고 셋째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다. 앞에서 언급한 인터넷의 새로운 가능성은 가상의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목소리 없는 관람객들의 즉각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역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사진이라는 결과물을 보는 순간 우리는 그만큼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쇼 스튜디오에서 영상으로 이런 과정을 보고 참여하게 된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러니 쇼 스튜디오를 둘러보길 바란다. 굳이 사진전을 보러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되고, 비요크의 최신 사진을 한 조각씩 다운받아 자신의 방에 전시할 수 있다. 흥미진진한 인터랙션과, 라이브 퍼포먼스 역시 만날 수 있다.

출처 : 디자인 (2007년 7월호)

※ 세계 5대 패션작가(이런걸 누가 만들었는지..) 중의 한명. 넘치는 창의력은 사진의 경계마저 허물듯..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