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출발은 사실의 재현에서 시작됐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는 기록자의 역할이다. 그러나 기술 발달과 함께 사진은 늘 새 시도를 했고, 1930년대 들어 독자적인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잡는다. 스트레이트 사진뿐 아니라 사진가 개인의 예술적 표현성이 들어간 ‘회화적 사진’이 등장하면서다. 이제 사진을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것들의 미학적 기록’이라고 단순히 믿는 사람은 없지만, 사진의 새로운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최근 개막한 ‘국제현대사진전-플래시 큐브(Flash Cube)’는 사진이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 얼마든지 가공, 조작이 가능한 매체임을 잘 보여준다. 네덜란드 위트레히트 조형예술대학장인 헹크 슬라거(48)가 기획한 전시회는 국내외 작가 21명의 작품 59점을 선보인다. 사진과 공간을 뜻하는 ‘플래시 큐브’라는 제목처럼 근래 사진계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공간에 대한 탐색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공간에 관심을 가진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통해 조작이 가능한 매체로서의 사진의 오늘과 내일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이 절대적 시간과 공간을 가지는 게 아니라 사진 속의 시공간도 유동적임을 보여주는 것. 여기에 영상 등 다른 매체와의 결합과 설치를 통한 새로운 시도, 회화성의 추구나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여줌으로써 일상을 환기시키는 작품 등이다.

  

토마스 데만트의 ‘착륙’은 산산이 부서진 도자기 파편이 계단참에 흩어져 있는 모습을 담았다. 그러나 사진 속의 깨진 도자기는 실제 도자기가 아니라 작가가 종이로 만든 도자기 파편 모형일 뿐이다. 많은 것의 덧없음, 사진 매체의 가공 능력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벨기에의 데이비스 클라바우트의 ‘반사되는 일몰’은 창문을 찍은 사진 위에 빛을 쏘아 일몰 광경을 재현해 영화와 사진의 경계를 확장시킨다. 히로시 스기모토는 아예 영화의 상영과 셔터 속도를 일치시켜 영화상영 전체를 사진에 담음으로써 시간을 사진에 축적시킨다.

독일의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는 거대한 아파트를 찍은 ‘파리, 몽파르나스’를 통해 사진의 회화성, 도상적 특성을 생각케 한다. 사진의 특성인 원근법은 물론 주변 환경까지 배제한 사진은 도시의 무미건조하고 삭막한 모습, 나아가 각 창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왜소함까지 떠올리게 한다. 도시 풍경을 담은 토마스 루프, 붓질을 해 다시 촬영한 클라스 후크의 작품들은 사진의 연출 능력을 선보인다.

한국 작가로는 윤정미, 양혜규, 구정아, 김상길, 이윤진 5명이 참여했다.

(경향신문)

※ Leeum 홈피에 있는 큐레이터가 써 놓은 글만 읽어봐도 이 전시회가 얼마나 난해한 가를 짐작케 한다. 사진을 통한 공간과 시간에 대한 탐구란 흥미로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표현방식의 난해함, 그보다 더 난해한 텍스트는 흥미마저 반감시키는 효과가 있다. 가보고 싶긴 한데..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내가 원하는 건 이런게 아닌데..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