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7월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는 좀 특별한 이벤트가 펼쳐졌다. 시사모(시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대부격인 요르그 부트게라이트(Jorg Buttgereit)라는 감독의 특별전이 열렸던 것.

'건전한'영화를 즐겨 보시는 일반 영화팬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공포 영화에 좀 빠졌네'…싶은 매니아들은 이 양반의 살 떨리는 시체 시리즈를 오매불망 고대하고 있을 정도로 그 명성이 자자한 독일 출신 감독이다. 요르그 부트게라이트는 87년 '네크로맨틱(Nekromantik)'이라는 장편영화로 데뷔하면서 공포 영화 장르에 새로운 장을 열었는데, 사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시체들의 모습은 지금의 현란한 특수효과 시각으로 보자면 조악하고 현실감이 떨어지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만인으로부터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시체와의 섹스 장면을 영화 전편에 걸쳐 다룬 그 선구자적(?) 정신으로 인하야, 세계의 수많은 공포 영화 팬들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음이다.

제작국인 독일에서조차 상영이 금지되었고, 영화적인 규제가 비교적 덜한 미국에서도 정식으로 허가가 나지 않아 통신판매 등을 통한 우회적인 방법으로 전해질 정도였으니, 서슬퍼렇던 5, 6공 시절의 우리나라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래도 그것을 악착같이 구해보고자 청계천 포르노샵(이 영화는 포르노가 아닌데도 불구하고)은 물론 외국에 유학가 있는 사람의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해서라도 꼭 보고자 했던 그 열정들이 아직까지도 간간히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왔던 바로 이 영화.

그러한 찬란한 과거를 지녔던 영화가 정식으로 영화제에서 개봉을 했으니, 매니아들의 열광이 어땠을까는 상상하고도 남음이라. 그러면 대체 어떤 영화였길래 이 난리였을까 독자들의 궁금증이 솔솔 생길 것이기에, 간략하게나마 영화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자.

애인인지 부부인지 아무튼 동거를 하는 남녀 커플이 있다. 어떤 식으로 만났는지는 모르지만, 시체 처리반에 몸담고 있는 남자가 몰래 빼돌린 시체와 쓰리썸(남녀 셋이 성 관계를 갖는 것)을 할 정도로 아주 궁합이 잘 맞는 커플 되겠다. 한술 더 떠 시체의 간이나 췌장 등을 이용해 때밀이 수건 대용으로 쓰질 않나, 여자의 미모로 봐서 장미꽃잎을 우려낸 물에서 목욕을 해도 시원챦을 판에 반쯤 썩어버린 해골의 눈에서 똑똑 떨어지는 핏물로 구석 구석 잘 닦고 있으니, 이 영화…함부로 남에게 보라고 권하지 말지어다. (본인도 몇번 당했다. 다음날부터 날 쳐다보는 그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음을…)

어쨌든…시체들과의 정겨운 사랑 놀음에 푸욱 빠져 있던 이 사람들에게도 중대한 위기가 닥쳐왔으니, 그것은 바로 시체 처리반에서 일하던 남자의 실직이었다. 두 커플들에게 있어서 실직이란 사태는 의식주의 공급 부족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원만한 성생활에도 아주 커다란 타격을 입히는 중대 사건이었다. 왜냐? 그들에게 있어…특히 그 여자에게 있어서는 "시체없인 못살아 정말 못살아"였거든.

결국 그녀는 "그동안 쓰리썸 너무 좋았어. 자기야"라고 편지 한 장을 써 놓고는, 벽에 걸려 있던 마지막 시체를 챙겨서 휭하니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 후 그 남자는 애인을 잃은 슬픔과 시체가 없는 빈 방의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직접 살인에 나서게 되는데, "인간에게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려는 욕구인 바이오필리아(Biophillia)와 파괴하려는 욕구인 네크로필리아가 공존한다"는 문학 평론가 김현 선생(1942~1990)의 얘기가 생각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영화는 결말에 이르러 놀라운 반전과 충격을 관객들에게 안기게 되는데, 이것은 곧이어 나올 네크로만틱2의 예고편이기도 했다.

요르그 부트게라이트 감독은 부천영화제에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며, "이 영화는 저예산 영화도 아닌 무예산 영화다"라며 관객들의 긴장을 풀어준 뒤 "16년 만에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상영하는지라 관객의 반응이 궁금하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끔찍한 시체 섹스 영화가 어떻게 예술 영화제에서 당당히 개봉되며 많은 평론가와 관객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것일까?

2004년 부천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를 담당했던 김영덕씨의 말씀을 빌리자면, "부트게라이트의 상상력이 엽기적이기는 하지만, 그가 그린 사랑의 본질은 보편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느 한 곳도 빠뜨리지 않고 온통 소유하고 싶은 욕망. 브트게라이트의 인물들은 그런 보편적인 욕망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이 네크로맨틱이라는 영화가, 많은 이들로부터 공포영화가 아닌 '사랑 영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시체와 사랑을 나눌 때마다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음악이 흘러 나오며, 구역질이 날 것같은 역겨움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주인공들의 그 이해못할 '사랑'에 왜인지 모를 슬픔과 자문에 빠지게 된다는 것.

"그 대상이 어떤 것이 됐건 나는 여지껏 저 사람들처럼 온 마음과 육신을 던져 누군가를 사랑해 본적이 있는가?" 대상이 시체이긴 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사랑을 했다. 그리고 그 열정 앞에 아무런 할 말이 없음을… 예술과 외설의 차이는 이런 것이다.

(영화속 오컬트 분석)

시체를 사랑하는 것을 일컬어 전문 용어로 네크로필리아(Necrophillia)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시체 애호증 또는 시간(屍姦; 시체 간음)이라고도 한다. 쉽게 풀어서 얘기하면 귀신 나올 것 같은 오밤중에 그 무서움을 극복하고서라도 무덤을 파내어 시체와 섹스를 하는 성도착증을 일컫는 말이다. (정신병리학적으로 환자이건 아니건 여기서는 논외의 대상으로 하자)

Necro와 Phillia의 합성어인 Necrophillia는 일반적으로 시체를 사랑하는 이상성욕을 의미하는데 우선 Necro는 '시체'라는 의미와 함께 '추억', '잊혀진 사람들', '옛사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Phillia는 '사랑', '집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의미를 합성한 Necrophillia는 "추억에의 집착"또는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으로서 의외로 고상하고 낭만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뜻을 가진 '네크로필리아'는 부트게라이트가 영화를 만들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는데, 멀게는 고대 이집트의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희랍의 사상가 헤로도투스(Herodotus BC490?-425?)는 그의 저서 '역사(historiai)'에서, 이집트인들은 지체높거나 아름다운 여자들의 시체는 죽은지 2~3일이 지난 후 어느 정도 부패가 진행된 뒤에야 미이라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넘겼다고 한다. 왜냐하면 '싱싱한' 시체를 탐내어 섹스를 서슴치 않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부학 열풍이 몰아쳤던 16세기 서양에서는 종종 "시체와 같은 아름다움(corpse like beauty)"이라는 표현이 쓰이곤 했는데, 해부대 위의 푸르스름한 기운을 띈 창백한 시체는 그 시대의 시인과 화가들에게 더할 나위없는 작품의 소재요 성적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19세기로 건너와 낭만주의 시대 때에도 예술가들의 이러한 '시체 사랑'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애드거 앨런 포우같은 작가는 자신의 소설 베레니스(Berenice)라는 작품에서 네크로필리아에 가까운 시신 훼손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 죽은 여인의 상아색 치아에 반한 나머지 시신에서 이빨을 뽑아내는 끔찍한 장면이 묘사되고 있기도 하다.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저질로 취급하지 않고, 오히려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주인공의 고뇌와, 죽음이라는 공포를 들여다 봐야하는 인간 내면의 히스테릭한 면을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양차 세계 대전 와중에도 네크로필리아는 빛을 발했다. '사랑의 기술'로 유명한 에리히 프롬은, 히틀러를 '네크로필리아'라는 코드로 이해를 했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히틀러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항상 생기에 넘쳤으며, 차디찬 기계적인 것에 많이 끌렸다 한다. 프롬은 이것을 파괴성의 악성 형태라 불렀으며, 이러한 생명 파괴에의 매료가 결국 스스로에 대한 파괴에 이르렀다는 것이 프롬의 분석이다.

하지만 히틀러 사후 2차 대전이 끝나고도 세계에서는 수많은 전쟁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전쟁을 수행하는 인간 자체가 어쩌면 선천적으로 시체 애호증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마광수 선생의 얘기처럼 어딘가에 진정으로 야(野)하게 사랑을 쏟아부을 수만 있다면, 전쟁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시체라도 만들어서 사랑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적지않이 외롭고도 애처롭게 느껴지는 바이다.

(오컬트(occult.co.tv) 운영자 이한우)

※ 일찍이 Hardgore 중에서 그 명성(?)이 자자했던 Nekromantik을 결국(?) 봤다. 구하기는 좀 되었지만, 원체 비위가 약한 나이기에.. 주저주저를 거듭한 끝에 대낮에 봤다. 위의 잘 정리된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악한 특수효과에도 불구하고 그 끔찍함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아~ 속이 안좋다. 내가 왜 봤을까.. 역시 호러는 취향에 안 맞는다. 지나친 컬트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