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대군 존영 (경기도 문화재 제 81호)
효령대군 (孝寧大君, 1396~1486)
조선 태종의 2남.
효령대군은 1396년(태조5) 태종대왕과 원경왕후의 둘째 왕자로 태어나셨으며, 휘(諱)는 보(補), 자는 선숙(善叔), 호는 연강(蓮江)이시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민첩하며 온화문명하고 효제충신의 자질를 갖추었고, 글읽기를 좋아하고 무예에도 능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2세에 효령군으로 봉군되시고, 좌찬 성정역공의 따님 이신 해주정씨와 혼인하셨으며, 17세에 효령대군으로 진봉되셨다. 효성이 지극하시어 부왕(태종대왕)의 사랑을 많이 받으셨고, 아우이신 충녕대군(세종대왕) 에게 성덕이 있음을 아시고 학문과 재덕을 숨기시면서 왕위를 겸손하게 사양하셨다. 조선왕조 개국 초기 억불숭유(抑佛崇儒)정책에 입각한 왕권확립과 종교변혁기에 동요하는 백성들의 민심이반을 총화로 이끌기 위해 유ㆍ불 조화론을 주창하셨고, 나라의 안정과 왕정의 토대를 굳건히 다지시며, 불서의 국역과 사찰의 증개축 및 법기 조성 등의 불사와 보국안민과태평성대를 위하는 위업에 전념하셨다.
특히, 백성들의 자치규범으로 '향헌(鄕憲)56조'를 제정하시어 대민강론으로 백성들의 윤리 도덕과 의식교화에 헌신하셨다. 또, 효에 대한 이론정립과 권계하실 목적으로 '부모은중장 수태골경합부'를 사경하셨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보2호인 '탑골공원의 10층석탑'의 건립과 보물2호인 '보신각종'의 주조를 직접 감독하셨다. 그리고 옛 흥복사 터에 원각사를 짓게되자 그 역사를 주관하셨으며, 계정혜(戒定慧)에 바탕을 둔 불법의 수련을 독실히 하시 면서, 연주암(관악산), 무위사(월출산), 백련사(만덕산), 회암사(양주) 등의 많은 사찰을 중건ㆍ중수하셨으며, 문장에도 뛰어나 연화경(蓮華經), 금강경(金剛經),원각경(圓覺經) 등의 우리말 번역을 비롯하여 많은 호국불사를 주장하시고 불교발전에 지대하신 공적을 또한 남기셨다.
대군께서는 왕자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공명과 부귀영화를 저버리고 초탈하신 삶으로 한 평생 충(忠), 효(孝), 덕(德), 우애(友愛), 겸손(謙遜), 검소(儉素), 조화(調和), 화목(和睦) 등을 몸소 실천하시며 천수(天壽)를 사신 분이시다.
조선왕조를 창건하신 태조고황제로부터 9대 성종대왕에 이르기까지 아홉 분 임금님의 조정을 보필하시면서 명예와 재물을 탐하지 아니하시고 오로지 왕실의 번영과 나라발전에 공헌과 충성을 다하셨다.
대군께서는 위민정신의 실천자이며 진취정신의 선구자로 왕실의 정신적 지주로서 근본적인 역할을 다하셨으며, 왕실의 큰 어른으로서 존경과 예우를 받으시며 사시다가, 1486년(성종17년) 5월 11일 91세를 일기로 하세(下世)하셨으며, 시호(諡號)는 정효(靖孝)공이시다.
정효의 뜻은 너그럽기를 즐기며 고종명(考終命)한 것을 정(靖)이라하고, 지혜롭게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한 것을 효(孝)라 한다. 슬하에 7남을 두셨으며 여섯째 아들 원천군(原川君)은 아우이신 성녕대
군에게 출계시키셨다. 손자 33인과 증손자 109인을 두셨으며,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에 예장(禮葬)되셨다. 또한, 배위이신 예성부부인 해주정씨는 좌찬성 정역(鄭易)공의 따님으로서 1394년 태어나 14세에 대군의 배필이 되셨다. 효순하고 현숙하시어 부덕(婦德)이 외명부 중에 으뜸이셨다. 대군을 정성껏 내조하시다가 1470년(성종1) 77세를 일기로 하세(下世)하셨다.
1737년 영조대왕께서 묘하에 사당을 세우게 하시고, 1789년 정조대왕께 서는 사당의 현판을 하사하셨으며, 1865년(고종2년) 종묘
세조 14년(1468) 매월당(金時習)에게 보낸 편지
해설(解說)
매월당(김시습)에게 드립니다.
무자년(1468년) 음력 5월 21일에 보(補)가 안부를 묻습니다
금오에서 헤어진지도 어언 한해가 다 되어 가는데 그대의 마음을 헤아릴 만합니다.
올 봄에 성상께서 홍복사를 중수하시어 원각사라 명명하셨습니다.
이에 낙성식을 거행하려고 할 때, 내가 열경(說卿: 김시습의 자)을 사림의 영수로 성상께 천거하여 성상께서 경사스러운 모임에 부르라고 하셨으니 지체하지 마고 오시기 바라오.
내가 마침 형님이신 양녕대군과 함께 이곳에 머물고 있는데 붉은 앵두는 무르익었고 뜰 앞에 작약과 장미는 바야흐로 활짝 피려고 하니 또한 새로운 고향에 온 듯합니다.
하루종일 기둥에 기대어 사색하며 아내의 웃음꽃이 피어있는 고향집과 바깥일을 모두 잊고 젊어서부터 타향을 떠도는 그대의 심정을 알 것 같습니다.
지금 나의 유일한 바램은 그대가 성대한 연회에 기꺼이 참석하여 참신계(參神契)를 함께 하였으면 합니다. 할 말은 많지만 이만 줄입니다.
전주이씨 효령대군파 항렬자규
※ 잠도 오지 않고, 여기저기 후비고 다니다가 아까 아슈에서 얘기나왔던 족보를 찾아봤다. 난 여지껏 18대손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버지 항렬이고, 난 19대손 이더라. 쩝.. 명확하게 말하면 효령대군 20세손으로 대로 호칭시는 19대손이라고 하는게 맞는다는 군. 보통 대로 호칭을 하니 19대손 하면 될지 싶다.
항렬상 아버지가 강(康)자 돌림이시고, 내가 족보에 들어가 있는 이름이 본명이 아닌 이성재(李星宰)라는 재자 돌림이니까, 내가 자식을 나으면 가운데 돌림자로 수(秀)나 정(廷)을 써야하는 것 같다. 뭐 그냥 족보상 그런거니까 그렇게 할지야 미지수고..
종친회 홈페이지( http://www.hyor.or.kr )에서 이거저거 디벼보니 별로 관심도 없던 것들 속에서 별천지를 보는 듯 싶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부귀영화(?)를 못 잊는 건 아닌지도 싶었고, 사는데 별로 도움도 되지 못하지만(아니군 그래도 대학때는 장학금도 주고 그러니까) 조상이 누군지 아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기도 싶더라.
암튼 시조의 존영을 보아하니 눈 작은 건 대대손손 내려오는 집안 내력이 아닐까 싶었다는…
그림의 눈은 다 저렇지 않나? 존영사진 그림은 다 그 사람이 그 사람 같더구만…ㅎㅎ 괜히 내력따지지 말기!
허허.. 아직도 안 주무시오? 섹쒸한 복부 이불로 잘 가리고 어여 주무세요..^^;
댁의 그 뇌쇄적인 섹쒸함에 비교할 수나 있겠슴?
나두 자세히 함 찾아볼까나..
慶州金氏桑村公派第三孫退菴公派世系圖
始祖 : 金閼智
六十三世: 璟
허걱.. 항렬을 보다보니..
우리집이 너희 윗대인가봥. 아버지가 기(起)자 쓰시고, 동생이 강(康), 조카가 원재(宰) ㅡ,.ㅡ
같은 집안이었넹..
ㅎㅎ.. 그런가 보네..
난 양령대군 18대손인뎅…
ㅋㅋ 결혼할 때가 다가오니 아덜 항렬도 다 신경쓰이시나 보죠?
허허.. 거참.. ㅎㅎ
그넘에 눈은 꼭 빼닮았구만…ㅋㅋ
ㅎㅎ.. 자넨 헤어스탈이 여포스러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