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매퀸과 알리 맥그로의 도주는 관능적이었다. 조직과 경찰 양쪽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며 풍기는 범죄적 남녀의 땀내음이나, 도시에서 황량한 국경지대로 바뀌는 도주로 자체가 그랬다. 도주하는 그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틈조차 끈적거렸다. 샘 페킨파의 '겟어웨이'(1972)가 빚어낸 도주의 관능을 킴 베이싱어와 알렉 볼드윈의 '겟어웨이'(1994)가 부활시키려는 건 역시 무모한 시도였다. 배우의 느낌으로 치자면 '아일랜드'의 이완 맥그리거와 스칼렛 요한슨이 좀더 근접해 보이나 이번에는 감독의 세공이 걸린다. 배타적인 아메리칸 시네마의 기수 마이클 베이는 사막에서 도시로 탈출 경로를 뒤바꾸고, 금지됐던 섹스의 분출을 최대한 지연시키며, 남녀를 쫓는 악당과 경찰의 무장력을 한층 높였지만 그냥 모듬상을 차린 듯하다.

모듬은 눈을 유혹하지만 신선도를 의심받곤 한다. '아일랜드'가 '겟어웨이'의 리메이크는 아니지만 '겟어웨이'의 자장 안에 머문다. 이완 맥그리거의 악몽으로 시작되는 침실장면은 재기발랄하나 '그랑 블루'를 닮았고, 복제인간을 배양시키고 복제인간에게 가짜 기억을 이식하는 음침하고 거대한 공장이나 고속도로 추격신은 거대하지만 '매트릭스'의 울타리를 넘지 못한다.

그렇지만 마이클 베이는 여전히 운이 좋다. 영화 제작 중에 세상을 놀라게 한 배아줄기세포의 복제 성공 소식은 '아일랜드'의 SF 근미래를 가시거리로 끌어와 리얼리티 한 가닥을 심어줬다. 그리고 일갈한다. 몇 십년의 생명 연장을 위해 당신과 닮은 인간을 돈주고 제조할 의향이 정말로 있냐고? 만약이라도 그것이 ‘뉴아메리칸 드림’이 된다면 곤란한 거 아니냐고.

'아마겟돈' '진주만' '나쁜 녀석들2'로 이어지는 마이클 베이의 탄착점이 늘 위대한 미국의 깃발이었다는 점에서 15년 뒤의 미래를 바라보는 회의어린 시선은 좀 뜻밖이다. 인색하게 말하면, 이건 도덕을 볼모로 삼은 상업주의다. 복제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인간에게 총을 난사하고 차로 짓뭉개는 자가당착이나 냉혹하기 그지없던 용병 대장의 급작스런 회개로 논리의 완결성을 스스로 파괴하는 짓을 태연히 벌인다. 또 갓 태어난 아기처럼 손가락을 빨고 있는 미국 대통령의 복제품 탄생을 제법 오래 응시하고, 백만장자들을 고객삼아 불법으로 인간복제를 해대는 메릭 바이오테크사가 국방성과 모종의 거래를 트고 있다고 거듭 힌트를 던져주고는 매듭을 짓지 않는다. 혹시 마이클 베이는 모종의 세력이 복제인간으로 자신의 위대한 대통령을 갈아치울지 모른다는 데에 근본적인 불안이 있었던 건 아닐까. 복제에 관한 지식이나 신념을 놓고 메릭 바이오테크사를 움직이는 메릭 박사(숀 빈)와 황우석 박사를 비교한다면 '아일랜드'는 순식간에 농담이 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아일랜드'에서 유일하게 농담이 등장하는 대목이 가장 ‘인간적’이다.

(씨네21, 2005-07-19)

※ 아일랜드를 봤다. 주저리주저리 이런 말보다 그냥 킬링 타임용으로 쓸만한 영화였다. 120여분간의 생각보다(?) 긴 러닝타임으로 인해 중반 이후부터 좀 늘어진 느낌이었고, 절대 죽지않는(?) 수퍼 클론들의 활약이 오히려 지루한(?) 느낌을 주었지만, 뭐 어떤가 눈 앞에서 팍팍 터지는 폭탄과 스칼렛 요한슨의 상큼 발랄한 몸매를 감상하는 데 7,000원 정도는 투자해줘야지..ㅎㅎ 아무튼 아주아주 심심한 청춘들은 아무생각 없이 보면 될 듯 싶다. 기대는 말고..^^;

오락성 : ★★☆

작품성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