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현재 국내에서 인터넷을 쓰는 사람은 3158만 명. 영.유아와 초고령 층 등 일부 연령층을 빼고는 국민 대부분이 네티즌이 된 것이다. 인터넷이 상용화한 지 올해로 10년. 온라인 사회의 움직임을 무시하고는 정치.경제.사회 변화를 알아챌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이에 본지는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손잡고 대한민국 온라인 사회의 모습을 정밀하게 해부했다. 분석 대상은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다음의 개인미디어(플래닛)를 이용한 1200만 명이다. 벤처기업 '사이람'과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가 3개월간 이 자료를 분석해 세계 최초로 온라인 사회의 지형도를 그려냈다. 네티즌은 엘리트, 아날로그형 대중, 디지털형 대중, 대중 스타 등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성별.연령별로 개인미디어의 친구 수와 방문자 수, 자료 스크랩 수를 종합 판단할 때 온라인 사회의 주역은 '19~24세 남자'였다. 네티즌의 관심도를 보여주는 방문자 규모 면에서 '33~42세 여자'가 '10, 20대 여성'을 누르고 2위를 차지했다. 연예인 인기도에서는 가수 '비'가 1위를 차지했다.

○ 온라인 친구 맺기=네티즌이 타인 개인미디어를 방문, 사귀기를 원할 때 상대방이 이를 받아들이면 이루어지는 인간 관계.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개인미디어(플래닛)를 운영하는 김명수(34)씨는 4700명의 온라인 친구가 있다. 친구들은 수시로 김씨의 개인미디어를 찾아와 댓글을 올리고 음악을 듣는다. 그의 개인미디어가 관심사를 나누는 공간이 된 것이다. 지난해 9월 이를 개설한 김씨는 "얼굴도 모르는 네티즌의 관심을 받는 게 신이 나 답장을 보내고 새 글을 올리면서 밤을 새우는 일도 많다"고 말했다.

온라인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네티즌 간 인맥이다. 김씨와 그의 온라인 친구처럼 수많은 네티즌이 서로 반응하면서 거대한 온라인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음 측과 본지의 공동 조사 결과 온라인 사회의 인맥 구조는 현실 세계와 사뭇 다르게 나타났다.

○ 이성 친구를 더 좋아해=다음 회원 1200만 명의 '친구 맺기' 관계를 조사해 보니 나이가 들수록 이성과 친구를 맺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남자 33세 이상 그룹에선 친구의 60% 이상(43세 이상은 62%)이 여자였다. 여자도 19세 이상 대부분의 그룹에서 친구의 절반이 남자였다.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는 "친구 관계를 맺은 상대가 이성이라는 점은 온라인 사회가 현실 사회보다 좀 더 개방적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10대는 주로 동성을 친구로 삼는 경향이 강했다. 남자 13~18세는 친구의 57%가 남자였고, 여자 10~12세는 63%가 여자였다.

○ '친구 맺기'는 10대가 주도=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펴낸 2004년 하반기 정보화 실태 조사에 따르면 10대의 인터넷 이용 시간은 주당 평균 10.4시간으로 20대(16.1 시간)와 30대(10.8 시간)보다 적었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 친구 맺기에 가장 열성적인 연령대는 10대로 나타났다. 전체 개인미디어 이용자의 33%가 10대였다. 13~18세의 평균 온라인 친구 수는 남녀 각각 72명과 38명이었다. 반면 19~24세는 남녀 각각 52명과 23명, 25~32세의 경우 남녀 각각 27명과 15명이었다.

○ 관심도.영향력 측면에선 20대 이후가 강세=개인미디어의 방문자 유치 면에선 10대보다는 20대, 30대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13~18세가 운영하는 남녀 개인미디어에는 하루 평균 각각 85명과 144명이 들렀다. 반면 남녀 19~24세에는 각각 309명과 185명이 찾아와 대조를 이뤘다.

특히 방문자 수 면에서 여자 33~42세가 2위를, 남자 33~42세가 3위를 각각 기록했다. 다음 관계자는 "10대들은 주로 신변잡기 위주로 운영하기 때문에 내용이 단순하지만 20대, 30대와 40대 초반은 다양한 테마를 제공해 세대.연령 제한 없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 두 개의 허브=온라인 사회에는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두 개의 '허브(정보가 교차되는 곳)' 구조가 존재한다. 한 형태는 인맥이 많은 네티즌끼리 친구를 맺고 있는 경우다. 이들은 조밀한 관계망을 이용해 여론을 만들고 삽시간에 메시지를 전파시킨다. 친구가 3~4명인 두 네티즌 간 의견은 사장되는 경우가 많지만 친구가 수백 명인 네티즌 간의 메시지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사회연결망 분석 업체인 '사이람'의 김기훈 사장은 "이들은 온라인 사회의 진정한 실력자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허브 구조는 연예인과 사이버 문인 같은 스타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친구를 맺으려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을 추종하는 수많은 '일반인'이 있다. 연예인과 오빠부대 관계라고 할까. 따라서 스타를 통하면 일반인들에게 빠른 속도로 여론을 전파시킬 수 있다.

○ 연예인은 촉매제=온라인 사회의 강자는 역시 연예인이다. 전체 개인미디어의 운영자 중 연예인은 0.04%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체 네티즌의 9.2%가 연예인이 운영하는 개인미디어에 접속했던 것으로 집계됐다. 다음 관계자는 "연예인의 개인미디어는 순수한 커뮤니티가 아닌, 오락정보 사이트나 다름없다"며 "개인미디어를 많이 쓰는 10~20대가 연예인에 관심이 많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음'과 본지 취재팀은 친구 수, 자료 퍼가기(스크랩) 수, 방문자 수를 기준으로 연예인에 대한 개인미디어의 인기 순위를 매겨봤다. 그 결과 가수 '비(사진)'가 모든 면에서 1위를 차지했다. 비의 친구는 3만3900명으로, 2위 GOD의 두 배였고, 퍼가기 수는 15만600건으로 2위인 GOD보다 네 배나 많았다.

방문자 수에선 비(58만5500명)에 이어 탤런트 송일국씨(45만7300명)가 2위에 올랐다. 각 분류 기준에서 5위권에 들어간 연예인은 송씨를 제외하고 모두 가수였다.

연예인들은 팬이 자발적으로 친구로 등록해주는 데 힘입어 상당한 온라인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인맥은 사이버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이다. 개인미디어를 방문해 스크랩해 가는 친구의 절대 다수가 청소년인 점을 감안하면 인기스타의 메시지는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대부분의 연예인은 개인미디어를 직접 관리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비 등의 개인미디어에는 자신이 올린 자료가 거의 없다. 연예기획사가 대신 관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송일국씨는 자신이 직접 운영해 차이를 보였다. 이는 다른 유명 연기자를 제치고 송씨가 높은 순위에 올라간 이유로 분석된다.

개인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연예인의 영향력은 아직은 대중문화 분야에 머물러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연예인이 자신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인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잠재력은 엄청나다. 서울대 장덕진 교수는 "온라인 활동이 뜸하던 스타 연예인도 특정 이슈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면 이에 동조하는 친구들을 움직이게 된다"며 "그럴 경우 대중문화가 아닌 일반 여론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인기 드라마 '해신'에 출연 중인 탤런트 송일국(34.사진)씨는 "팬들과 격의 없이 가까워진 것이 가장 큰 변화이자 기쁨"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9월부터 개인미디어를 직접 운영해 오면서 많은 온라인 친구를 사귀었다. 자신의 어릴 적 사진과 부모(탤런트 김을동씨가 모친)의 결혼식 사진 등을 개인미디어에 띄워 놓고 있다. 전문 사진사가 촬영한 작품을 올린 다른 연예인과 대조적으로 신선함이 느껴진다. 송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직접 팬들에게 댓글을 달아준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습니다. 팬들의 반응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요."

그의 개인미디어는 연예인 순위에서 방문자 수 2위, 친구 수 4위에 올랐다. 컴퓨터그래픽에 관심이 많은 그는 플래시 동영상 네편을 직접 제작해 올려놓기도 했다.

"한 편 만드는 데 꼬박 24시간 걸립니다. 힘들어도 팬들이 자주 찾아주시니 너무 즐겁습니다."

개인미디어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팬과 함께 찍은 다정한 사진이 '송일국 애인'으로 둔갑해 인터넷에 떠돌았던 것이다.

송씨는 "제가 유명해진 것이라고 생각해요"라며 웃었다. 그는 해신 촬영이 끝나고 여유가 생기면 더 많은 시간을 인터넷 친구들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질문 쪽지가 쏟아져 들어와 너무 놀랐습니다."



네티즌 우용암(47.자영업)씨는 요즘 어리둥절하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 컴퓨터를 배운 그는 지난해 9월부터 인터넷 다음의 개인미디어에 인물.풍경사진 등을 올렸다. 취미삼아 소박한 글도 수시로 써놓았다. 평범한 40대의 글과 사진이 뜻밖에도 네티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온라인 친구가 돼준 사람 만도 8400명. 하루 평균 1000여 명이 그의 개인미디어 사이트를 클릭한다.

"현실 세계에선 친구가 수십 명밖에 안 되는데… 이 나이에 복 받았지요." 우씨의 개인미디어는 저명인사나 연예인 등을 제외한 일반인 중에서는 가장 많은 방문자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 우씨와 같은 것은 아니다. 개인미디어의 상당수는 썰렁하다. 볼 것과 즐길 것이 없어 찾는 이가 적기 때문이다. 보기에 따라 온라인 세상이 현실 세계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온라인 명성'의 쏠림 현상은 본지가 다음 측과 함께 네티즌의 정보 이용 형태 및 온라인 활동성을 분석한 결과로도 입증됐다.

○ 부익부 빈익빈=이름난 음식점에 손님이 넘쳐나듯 온라인 사회에서도 인기 개인미디어에 방문자가 몰려든다. 음식점이 유명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사이버 세상에서 '명성'을 얻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다음 개인미디어를 분석한 결과 인기있는 상위 1%가 전체 이용자(1200만 명)의 35%를 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상위 5%의 개인미디어에 네티즌의 57%가 몰린 것으로 분석됐다. 네티즌은 개인미디어 운영자와 친구가 되고 공동 관심사를 나누며 온라인 사회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개인미디어의 절반은 전체 네티즌의 5.6%만 '손님'으로 맞을 정도로 시들했다.

경희사이버 대학 민경배 교수는 "온라인 사회에서는 활동력이 강한 극소수의 네티즌이 여론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며 "하지만 온라인 스타는 유동성이 강해 수시로 등장하고 사라지는 속성이 있다"고 말했다.

○ 입시 탓 중.고생 보다 초등생 활동 많아= 본지와 다음 측은 2004년 12월 한 달간 다음의 3대 서비스인 개인미디어.카페.메신저를 가장 자주 이용한 1만 명을 선정했다. 온라인 사회를 이끄는 이들 '디지털 리더'의 실체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그 결과 1만 명 가운데 절반 가까운 46%가 학생이었다. 대학생이 20%로 가장 많았고, 초등생(15%)과 중.고생(11%) 순이었다. 대학생들은 주로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 밝히고 카페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한양대 공대 이성연(20)씨는 "온라인으로 친구들과 시험 정보를 교환하고 정치.경제.사회 분야 이슈에 대한 의견을 수시로 나눈다"고 말했다.

중.고생이 초등생보다 활동력이 떨어진 것은 다소 예상 밖의 결과다. 다음 측 관계자는 "과도한 입시 경쟁 때문에 중.고생이 초등생보다 인터넷에 덜 접속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학생에 이어 정보통신.서비스.교육 분야 종사자가 뒤를 이었다. 무직자(3.3%)도 리더 그룹의 일부분을 차지, 청년실업의 그늘을 보여줬다. 직업을 알 수 없는 디지털 리더도 14%나 된다. 온라인 사회의 익명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카페의 주역은 10대 여학생=개인미디어를 '19~24세 남자'가 주도하는 것과 달리(본지 5월 9일자 1면) 인터넷 카페의 활동 주역은 '13~18세 여자'였다. 이들은 평균 49개의 카페에 가입해 있었다. 모든 성별.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규모다. 하지만 카페 운영자 중에는 20대 후반의 남자가 가장 많았다. 여성들은 패션.미용.교육.재테크 등 생활 정보를 다루는 카페를 선호했다. 실제로 이들 4개 분야의 카페가 방문자 수 기준으로 상위 10위 안에 모두 올라 있다. 30만~50만 명씩을 회원으로 보유한 이들 카페의 하루 방문자 수는 최대 240만 명에 이른다. 이번 조사를 담당한 사회연결망 분석 전문기업 '사이람'의 김기훈 대표는 "이들 카페가 감성적인 일상사를 공유하는 곳이어서 여성 활동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개인미디어=자신의 글.사진 등 콘텐트를 올리고 다른 사람과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인터넷 전용공간. 블로그.플래닛.미니홈피 등이있다.

"34만 명의 가족이 모두 부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맞벌이 부부 10년 10억 모으기'의 카페 운영자 박범영(34.사진)씨는 현실 세계에서도 유명인이 된 네티즌. 평범한 회사원이던 박씨가 카페를 만들던 2001년 6월은 저금리에 부동산 가격이 뛰면서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시기다. 그는 "샐러리맨도 재테크를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온라인 가족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회원들이 올린 글 가운데 부동산.금융상품 등 재테크 정보만 따로 뽑아 매주 회원들에게 e-메일로 보냈다. 그러자 '돈을 벌게 해 주는 카페'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2003년부터는 하룻밤에 회원이 수백 명씩 불어나기도 했다.당연히 카페의 영향력도 커졌다. 카페의 애칭인 '10 in 10'과 '10억 열풍'이 지난해 말 언론사가 선정한 신조어에 뽑혔다. 지난달에는 카페에 올라온 글을 모아 재테크 관련 책도 냈다. 카페는 유명 강사를 초청해 강연회를 여는 등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박씨는 최근 온라인 증권사의 요청에 따라 인기 카페 운영자 자격으로 라디오 광고에 출연했다. 온라인 사회에서 뜬 박씨가 현실 세계에서도 스타가 된 것이다. 모 신용카드사에서 일하는 박씨는 1999년 결혼 뒤 맞벌이를 해 지금까지 5억원(집값 포함)을 모았다.

지난달 19일 인터넷 카페 '한류 열풍 사랑(한열사)'이 들썩였다. 한 회원이 "미국 CNN방송이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한 '일본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찬반 설문조사'가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 글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카페 운영자 박찬화(34)씨는 "회원들이 해외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얻은 정보를 자발적으로 띄워 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카페는 원래 한류 바람에 대한 의견 교환을 위해 문을 연 공간이었다. 그러나 독도 문제와 일본의 역사 왜곡 같은 민감한 시사 문제에 대한 여론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네티즌 사이에 '애국자 카페'라는 애칭을 얻었다.

네티즌의 친목.의견 교환 모임인 카페는 각종 사회현상이나 실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개인미디어가 주로 신변잡기 정보를 나누는 곳이라면, 카페는 생활 정보와 사회 의견 등을 공유하는 장소다.

지난 2일 고려대 총학생회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명예박사 수여식에서 시위를 벌이자 바로 다음날 '총학 없는 평화 고대'라는 카페가 개설돼 시위 학생의 행태를 꼬집고 나섰다. 이처럼 일부 카페는 사회적 이슈에 조직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해 여론을 주도한다.

대표적인 여론 주도 카페는 '한열사' 외에도 '맞벌이 부부 10년 10억 모으기' '취업 뽀개기' '국민을 협박하지 말라' '아파트 값 내리기 모임(아내모)' 등이 있다. 이들 카페는 경제 분야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거나 정부 정책의 변화를 유도한다.

취업 정보를 제공하는 '취업 뽀개기'는 대기업이 사원 채용 때 신경 쓸 만큼 영향력이 커졌다. 최근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제발 면접 정보를 유출하지 말아 달라"고 카페 측에 요구하기도 했다. '아내모'는 아파트 원가 공개를 요구하는 시민운동으로 확산됐으며, 정부가 부동산정책을 세울 때 참고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이 밖에 '국민을 협박하지 말라'는 지난해 초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발의에 반대해 만들어져 개설한 지 한 달 만에 10만 명이 가입하는 폭발력을 보였다.

"아이가 얻어맞아 눈 주위가 시퍼렇게 멍들었어요."(대구 어린이집 원장의 초등생 자매 폭행 사건)

"어떻게 이런 도시락을 결식아동에게…."(서귀포시 부실 도시락 사건)

최근 네티즌이 인터넷을 통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올린 글 중 일부다. 이들 사건은 온라인상의 '퍼가기'에 의해 큰 사회문제로 확산됐다. 네티즌이 올린 글과 관련 자료가 모세혈관같이 퍼져 있는 네트워크를 타고 순식간에 유포된 것이다. 인터넷이 이미 여론 형성의 강력한 매체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본지 취재팀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인터넷에서 제기된 다섯 사건의 여론 형성 과정을 들여다봤다. 현실 세계를 움직인 온라인 사회여론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분석 대상은 ▷초등생 자매 폭행 사건(4월)▷연예인 김상혁 음주 뺑소니 사건(4월)▷논산 육군훈련소 인분 사건(1월)▷서귀포시 부실 도시락 사건(1월)▷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지난해 12월) 등이다.

○ 여론은 모세혈관을 타고=온라인 사회에서 정보는 축지법처럼 빠르게 전파된다. 인터넷에 남아있는 기록을 통해 다섯 사건의 전파 과정을 분석한 결과 온라인에서 최초로 문제가 제기된 지 평균 이틀 만에 오프라인의 언론사가 보도하거나 관계 당국이 조사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 어린이집 원장의 초등생 자매 폭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의 내용이 처음 알려진 것은 4월 11일 새벽. 대구의 한 네티즌이 포털사이트에 관련 내용을 등록했다. 이후 네티즌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네티즌의 댓글이 쏟아졌고 주요 포털 사이트의 메인 뉴스가 됐다. 문제의 어린이집은 인터넷에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지 하루 만인 12일 문을 닫았고, 경찰은 원장(46)을 입건했다. 13일 각 언론사가 기사화하기 시작했다.

논산 육군훈련소 인분 사건도 인터넷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1월 10일 육군훈련소에서 화장실 청소 도중 발생한 이 사건은 훈련병 일부가 사건 내용을 가족에게 알리면서 시작됐다. 이후 훈련병 가족이 19일 국방부와 청와대 홈페이지 등에 글을 게시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 어떤 경로로 퍼지나=한 사람이 글을 올리면 이에 동조하는 네티즌이 댓글을 올리고, 관련 내용을 퍼다가 개인미디어와 카페, 포털 뉴스에 전파한다. 주로 익명의 네티즌이 여론 형성에 앞장서고 있다. e-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해 의견을 나누고 분노를 토로하는 네티즌도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온라인 사회에서는 댓글이 여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예인 김상혁 사건의 경우 그가 음주 뺑소니 사고를 냈다는 의혹이 4월 11일 김씨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통해 사실로 밝혀졌다. 이후 '미디어 다음'에 관련 내용이 게시된 뒤 그를 비난하는 댓글이 5226건이나 올랐다. 김씨는 결국 재수사를 받아야 했다.

육군훈련소 인분 사건도 1월 20일 하루 동안 군 당국의 인권침해를 비난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댓글이 미디어다음에 4236건이나 게재됐다.

다음 관계자는 "댓글 수가 평균 1000건이 넘으면 강력한 여론이 일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 서명 운동에 시위도=요즘 네티즌은 자신의 주장을 현실세계에 알리기 위해 실력 행사까지 벌인다. 특히 온라인 서명운동과 시스템을 다운시키는 사이버 시위는 현실세계를 움직이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서귀포시 부실 도시락 사건의 경우 1월 11일 하루 만에 5400명이 개선을 촉구하는 사이버 서명운동에 동참했고 급기야 서귀포시청 홈페이지가 마비됐다.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경우 네티즌이 청와대와 경찰 등의 게시판에 몰려들어 "철저히 수사하라"며 사이버 시위를 벌이자 국가인권위원회는 현장에 조사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경희사이버 대학 민경배 교수는 "특정 이슈나 의혹에 대한 여론 형성을 위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네티즌들이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며 "그러나 의도된 여론몰이 세력도 있어 네티즌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이 이 정도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

대구 어린이집 원장의 초등생 자매 폭행 사건을 인터넷을 통해 처음 알렸던 '복부 글래머(인터넷 ID)' 이모(27.여)씨. 그는 인터넷의 파급 효과와 힘을 새삼 절감했다고 했다.

지난달 9일 이씨는 길에서 얼굴에 상처가 있는 자매를 발견했다. 자매중 동생에게서 "원장 선생님한테 맞았다"는 설명을 듣고 이씨는 자신의 디지털카메라로 이를 찍은 뒤 인근 경찰서에 신고했다. 그리고 11일, 한 포털사이트에 '어린이집 원장에게 맞은 아이의 비참한 몰골'이라는 제목의 글과 사진을 올렸다.

이씨가 인터넷에 글을 올려 의견을 개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웨딩숍에서 신부도우미로 일하는 이씨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격려 메일을 수없이 많이 받고 여러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왔지만 이씨는 대부분 사양했다. 게시물 하나가 큰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한 만큼 더 조심스러워진 것이다. 이씨는 이번에도 본명 공개를 원치 않았다.

국민 대부분이 인터넷을 쓰는 우리나라에서 온라인 사회의 영향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 사회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 속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이번 분석은 기술.사회적 측면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사람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맺는 사회적 관계의 전반적인 양상이 드러난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소규모 자료 분석이나 웹사이트 간 연결망 분석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3500만 명이 넘는 네티즌의 직접적인 관계를 분석한 것은 국내외를 통틀어 처음이다.

2005년 현재 191개 유엔 회원국의 평균 인구는 3400만 명이다. 따라서 이번 조사를 통해 평균적인 국가 하나의 국민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를 모두 분석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인터넷 사회의 구성요소도 나타났다. 인터넷에도 엘리트와 보통 사람은 뚜렷이 나눠진다. 하지만 인터넷 사회의 엘리트는 폐쇄 그룹을 형성하며 정보를 독점하기보다 대중과 친구가 되면서 자신의 지위를 새로 만들어간다. 탄핵반대 촛불집회나 서귀포시 부실 도시락 사건 등 인터넷을 통한 여론 형성 과정도 일부 그 실체가 밝혀졌다. 상대방의 정확한 나이와 성별도 모르는 상태에서 친구 관계를 맺는 데에도 일정한 경향이 존재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이런 발견들은 우리 사회의 향후 모습이 어떤 것일지를 그려보는데 중요한 디딤돌이 된다.

한국은 인터넷 인프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음 카페나 싸이월드 미니홈피 같은 세계적인 히트 상품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인터넷 환경에서 그 경쟁 우위를 지켜갈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인터넷 이용 행태를 세밀히 분석한 이번 조사는 한국이 인터넷 분야에서 이룩한 경쟁 우위를 지켜나가기 위한 차세대 전략의 구상을 위해서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

국내 최대 인터넷 포털 서비스인 '다음'은 가장 폭넓은 연령대의 회원을 갖고 있다. 카페.개인미디어.메신저 등 각종 서비스의 이용자 수가 3500만 명을 넘는다. 이렇게 엄청나고 복잡한 세상을 통째로 들여다봤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번 조사의 의미는 컸다.

전체 분석은 3500만 명의 자료를, 온라인 사회의 지형도를 만드는 데는 개인미디어 이용자 1200만 명의 자료를 썼다. 1200만 명 중에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네티즌도, 거의 활동하지 않는 네티즌도 있다. 다음보다 개인미디어 이용자가 더 많은 사이트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온라인 사회의 경향성을 보여주는데 이 정도 표본이면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정지은 팀장

(중앙일보, 2005-05-09)

※ 대부분 이런 류의 사회분석 연구가 가지는 썰렁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의미있는 조사라고 생각한다. 10년전 John Naisbitt이 쓴 책에서는 네트워크가 발전되면 될수록 직접민주주의가 발달할 것이라고 했는데, 작금의 상황을 보면 오히려 선정적인 여론재판이 심화되는 방향이 아닌가 싶다. 하긴 사회는 항상 빠르고, 자극적인 방향으로 나갈테니까. 암튼 장문의 기사를 무단 전제하면서 느낀 점은 이런 글을 봐도 어떤 놈 이걸로 논문 썼겠구나 하는 생각뿐이라니..나원참